통합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신청자들의 '정체성'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맞서는 민주개혁 세력의 정체성을 확보해야 민주당의 활로가 트일 것이라는 데 당 지도부와 공심위가 인식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 기획단의 한 핵심관계자는 26일 "공심위 내에서 당의 정체성을 무시하거나 정책적 혼선을 부추긴 인사들에 대한 엄중한 책임규명이 있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한나라당과 대립각이 세워진 쟁점 현안들에 대해 당론이 결정된 뒤에도 이를 따르지 않았던 신청자들의 경우 사실상 공천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공심위가 이처럼 당의 정체성을 우선 순위에 올려 놓는 것은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당은 과반에 육박하는 의석을 갖고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종합부동산세 도입, 금산분리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의 경우 아예 당론을 정하지 못했거나, 당론이 결정돼도 내부 이탈자들 때문에 응집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당 지도부와 공심위는 이 때문에 민주개혁 세력의 동력이 약화했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 공심위와 총선기획단은 지난해 대선 직전의 이라크 파병연장 반대, 17대 국회 초반의 분양원가 공개, 종부세 6억원 기준 도입 당론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검토 중이다. 한나라당과의 차별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판단에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보수색채가 짙은 의원들은 공천이 어려워질 수 있다. 공심위는 또 최근 자유선진당 창당을 전후해 공개적으로 당적 변경을 거론한 일부 충청권 의원들에 대해서도 당의 정체성과 관련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한편 공심위는 이날 회의에서 인지도와 의정 만족도, 재출마 지지도 등에 대한 여론조사를 토대로 현역의원에 대한 의정활동을 평가, 점수에 따라 의원들을 A~D등급으로 나눈 뒤 D등급에 해당하는 30%에 대해선 공천을 배제키로 했다. 박경철 공심위원은 특히 "1차로 호남 현역의원 30%를 교체하기로 했다"며 "나머지 의원들의 공천도 확정적인 게 아니어서 물갈이 폭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벌써부터 호남 지역 현역의원의 교체율이 50% 안팎에 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공심위는 관심을 모으고 있는 비리ㆍ부정 전력자 배제 등의 공천심사 기준에 대해선 27일 이후 재논의키로 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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