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교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백 개의 손이 번쩍 올라간다. 낮 12시를 넘겨 배꼽시계가 울릴 만도 하지만 배고픔은 이미 잊었다. 손을 힘차게 올리며 ‘제발 나에게 기회를 달라’는 수백명의 학생 중 앳돼 보이는 학생 한 명에게 마이크가 주어졌다. 답을 또박또박 말하자, 교수는 “어이쿠 너 이번에 중학교 들어가는 거 맞냐? 그걸 어떻게 알았냐”며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그렇게 과학을 ‘즐기고’ 있었다.
26일 서울대 문화관에서 이틀째 열린 ‘청소년을 위한 자연과학 공개강연(한국일보사ㆍ서울대 자연과학대학ㆍ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 공동주최, 포스코 협찬)’은 전날보다 참가 학생들의 반응이 더 뜨거웠다. 전국 초ㆍ중ㆍ고교생에게 과학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다는 취지로 마련된 이날 행사엔 1,500여명의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강연장을 채웠다.
이날 행사의 백미는 단연 ‘과학퀴즈’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김희준 서울대 화학부 교수가 진행을 맡았다. 김 교수는 중앙 스크린에 주최 측이 준비한 문제를 띄우고 청중 가운데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나오면 시원스러운 보충 설명을 곁들였다.
열기는 첫 문제가 나가면서부터 후끈 달아 올랐다. 오래 전 우주 공간에서 대폭발이 일어나 우주가 태어났다는 의미의 ‘빅뱅(Big Bang)’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을 묻는 문제가 나오자마자 어린 초등학생부터 40대 주부까지 ‘저요, 저요’를 외쳤다. 요란했던 분위기는 한 학생이 “프레드 호일 박사(영국의 천문학자)”을 알아맞히면서 잠깐 잠잠해졌다.
‘몸풀기 문제’였던 1번과 달리 이후엔 일반 성인들이 쩔쩔맬 만큼의 고난도 문제들이 뒤를 이었다. 특히 어떤 숫자를 제시한 후, 그 숫자가 상징하는 바를 영어로 표현했을 때 빈 칸에 어떤 단어가 들어가야 하느냐를 묻는 문제가 많았다. 가령 “수소원자의 보어반경이 0.53 옹스트롬”이라면 ‘0.53’을 제시하고 ‘보어(Bohr)’와 ‘옹스트롬(Angstroms)’를 맞히도록 하는 식이다.
수백대 1의 경쟁을 뚫고 정답을 맞혀 상품을 타가는 기쁨은 ‘길 가다 돈 줍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부천 부곡초 6학년 김경화양은 손을 수십 번도 넘게 든 끝에 ‘태양을 중심에 놓으면 주전원이 필요없다는 것을 보인 사람’(정답은 코페르니쿠스)을 맞혀 도서교환권을 받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틀 동안의 행사에 학생은 물론 학부모들 역시 뜨거운 호응을 보였다. 아들 김선빈(14)군과 함께 3년 째 공개강연에 참가하고 있는 김미영(45ㆍ여)씨는 “동서양의 과학문화를 다양한 주제를 통해 흥미롭게 보여줬다”면서 “초등학생도 있지만 중고교생이 더 많으니 내년엔 강의 눈높이를 ‘살짝’ 높여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천 집에서 새벽에 출발해 중1, 초5 두 딸과 함께 강의를 들으러 온 이성숙(39ㆍ여)씨는 “이렇게 유익한 강연을 매년 서울대에서만 한다는 점이 아쉽다”며 “인천을 비롯한 각 지역 도시에서도 이런 강연을 쉽게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원기 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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