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 / 휴머니스트"극적으로 응축된 운명적인 순간들"
1815년 2월 26일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했다. 10개월 전 유배당하며 “제비꽃이 피면 돌아오겠노라”고 했던 그는 자신의 말을 지켰다. 20여일 만에 파리까지 진격한 그는 다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100일 천하, 그 해 6월 18일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면서 그의 운명도 다하고 만다. “운명은 강한 자와 난폭한 자들에게 밀어닥친다. 여러 해 동안 그것은 노예처럼 단 한 사람에게만 복종한다. 예컨대 … 나폴레옹 같은 사람들이다. 운명이란 원소적인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은 잡을 수 없는 원소인 운명과 비슷한 존재다.”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는 <광기와 우연의 역사> 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광기와>
나폴레옹과 워털루에 대한 묘사야 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유독 츠바이크의 이 책이 떠오르는 것은 다름아닌 그의 이런 문장 때문이다. 그의 문장은 선동적이리만치 박진감 넘친다. 로맹 롤랑, 발자크 등의 평전을 비롯해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횔덜린, 니체, 디킨스, 스탕달, 카사노바 등에 관한 전기적 서술을 모은 <천재와 광기> 등으로 알려진 오스트리아 출신의 츠바이크는 20세기 최고의 전기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천재와>
<광기와 우연의 역사> 는 1998년 번역돼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한국에 츠바이크의 고정 팬들을 만들어놓은 책이다. 츠바이크는 이 책에서 동로마제국의 최후부터, 뇌졸중을 극복하고 ‘메시아’를 작곡한 헨델, 정치범으로 수감됐다가 사형 직전에 풀려난 도스토예프스키 등 예술ㆍ역사상의 ‘극적으로 응축된 운명적인 순간’들의 이야기 12가지를 방대한 지식과 현란한 문체로 들려준다. “그 순간은 역사상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결정하게 된다. 단 한 번의 긍정이나, 단 한 번의 부정, 너무 빠르거나 혹은 너무 늦거나 하는 일이 이 순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서 개인의 삶, 민족의 삶, 심지어는 인류 전체의 운명의 흐름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츠바이크의 문장 자체가 극적이다. 광기와>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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