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호스트의 일터를 찾아가봤다. 지난 18일 GS홈쇼핑 방송센터(서울 문래동)의 한 스튜디오에 홈쇼핑 경력 10년의 쇼핑호스트 이창우(38) 과장이 방송 2시간 여를 앞두고 들어섰다.
지금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메이크업 등 프로그램 진행 준비부터 마쳐야 한다. 이날은 사흘 연속으로 편성된 특집방송 ‘경기 우수식품 특별전’의 첫날.
방송 1시간 전에야 스튜디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회의실에 모든 스태프가 모였다. 이씨와 이진아, 박정훈, 이유진 등 간판급 쇼핑호스트만 4명이 동원되는 등 평소보다 배가 넘는 스태프가 투입되는데다 회의시간은 여유가 없는 만큼, 단 1초도 한눈을 팔 새가 없다. 의지할 대본도 없으니 피가 마를 지경이다. 오후 3시15분, 드디어 생방송 시작이다.
일인다역이다. 그래서 그 정체에 대한 오해도 많다. 쇼핑호스트는 1995년 케이블TV 출범과 더불어 홈쇼핑이 출발하고서야 소개된, 13년 밖에 되지 않은 신종 직종. 카메라 앞에서 조명을 받는 직업이다 보니 방송에 몸 담고 싶은 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방송 진행을 하니 방송인이라고 해도 되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물건을 파니 영업사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다. 상품기획과 방송구성에도 참여하니, ‘반쪽이’ MD(상품기획자), PD도 되겠다.
대박이다 싶으면 한시간 방송만으로도 중소기업 연간 매출에 해당하는 수십억 판매 기록이 나오는 곳이 홈쇼핑이다. 쇼핑호스트에게 던져지는 단골질문 중 하나를 물었다. “매출에서 쇼핑호스트가 기여하는 정도는?” 이창우씨는 “MD의 역할, 즉 어떤 상품이냐가 70%를 차지하고, 나머지 30%가 쇼핑호스트와 PD에 달려 있다”며 “업계에서는 매출 목표의 70%를 달성하지 못하면 상품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답한다.
하지만 방송시청자, 즉 고객 앞에 나서는 건 오직 쇼핑호스트밖에 없기 때문에 책임감은 훨씬 무겁다. 쇼핑호스트가 방송에서 하는 멘트 하나하나가 제조업체, 판매업체를 대표하기 때문. 몇 년 전 한 쇼핑호스트는 업체 실수로 방송 때 말한 배송날짜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고객들로부터 항의가 쏟아져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이씨는 “출ㆍ퇴근과 근무시간이 일정치 않다는 점을 빼면 다른 직장인과 똑같다”고 강조했다. 1,2시간 방송에 수십억 매출을 올린다고 해서 억대 연봉을 받는 것도 아니고, 회사가 내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회의가 들 때도 많고, 짧은 방송에 매출을 올려야 하니 스트레스도 많이 쌓인다.
쇼핑호스트들의 직장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순간은 매주 한차례 방송편성표를 받아들 때다. “적으면 하루 1회, 많게는 3회씩 상품판매 방송을 하는데, 일반 회사원들이 인사고과에 울고 웃듯 우리(쇼핑호스트)들은 방송편성표에 희비가 엇갈리죠. 방송스케줄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내 성과가 좋지 않았다는 얘기니까요.”
쇼핑호스트로 일하려면 직장인 10명 중 7명 꼴로 스트레스 원인이 된다고 호소하는 회의에도 강해지는 게 필수. 매번 방송 때마다 스태프와 회의가 있고, 상품기획 회의도 있다. 신상품 론칭이라도 할라치면, 회의는 끝이 없다. 방송시간보다 회의시간이 더 길다. 이씨는 “쇼핑호스트는 소비자 입장에서 제품의 특징을 파악하고 방송 판매 때 어떤 점에 소구를 하면 좋은지도 분석해서 아이디어를 내고, 경쟁사 제품과 업계의 동향도 꿰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MP3플레이어로 시장에서 인정받은 업체가 뒤늦게 내비게이션 시장이 뛰어들어 내놓은 제품을 팔게 됐다면? 최근 디지털기기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디자인을 중시하는 경향을 강조하는 식이다.
이씨의 독특한 이력이 이럴 때 빛을 발한다. ‘1995년 대홍기획 AE 입사, 98년 GS홈쇼핑 잡화MD 전직, 2000년 대홍기획 AE 재입사, 2002년 GS홈쇼핑 쇼핑호스트 재입사’. 10년 전 잡화MD로 근무할 당시 방송에 출연해 상품 설명을 하다가 아예 쇼핑호스트로 직종 전환을 했다. 취급하는 상품은 식품, 건강, 이미용, 의류, 가전, 보험 등을 망라해 멀티형 쇼핑호스트. 마케팅기법 중 대표적인 SWOT분석을 상품에 적용, 강점(strength),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y), 위협(threat)에 따라 장단점을 분석하는 건 기본이다.
쇼핑의 고수로 꼽히는 홈쇼핑 쇼핑호스트들도 자신이 방송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직접 구입할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이씨는 “(우리도) 써봐야 상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팔 수 있겠죠. 제가 파는 상품은 대개 샘플을 받아 사용하기 때문에 직접 살 기회는 없지만, 그 대신에 동료들이 판매하는 상품을 많이 사죠. 직업병이라고 할까, 쇼핑하러 가면 TV홈쇼핑에서 이만한 질의 제품이면 훨씬 쌀 텐데 하는 생각이 사라지질 않습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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