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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미술 반세기' 회고전 여는 하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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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미술 반세기' 회고전 여는 하종현

입력
2008.02.25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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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그의 이름 뒤에 붙었던 직함들이다. 한국아방가르드협회장(1969-74), 한국미술협회 이사장(1986-89), 베니스비엔날레 커미셔너(1988), 홍익대 미대 학장(1990-94), 서울시립미술관장(2002-06). 하지만 이제 이 꼬리표들을 떼어버리고 이름 석자만으로 직립해야 한다. “한번도 떠난 적 없는” 화가의 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우환 박서보 김창렬 등과 함께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하종현(73) 화백의 ‘추상미술 반세기’전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29일부터 다음달 23일까지 열린다. 전시를 앞두고 경기 일산의 작업실에서 만난 노화백은 대가답게 자신만만했고, 청년처럼 시종 유쾌했다.

#“작품도 호강 좀 시켜줘야지”

지난해 1월 옮겨온 그의 작은 이층집 옆엔 4개 동의 창고가 나란히 붙어있다. 두 동은 전시장처럼 꾸며 작품들을 걸어뒀고, 한 동은 작품 500여점을 차곡차곡 진열한 수장고로, 또 한 동은 작업실로 쓰고 있다. 설비가 모두 미술관처럼 어엿하다. 작업실에는 작가의 의욕을 보여주는 200호 이상 대형 액자틀이 작가의 호명을 기다리며 가득 쌓여있다.

“미술관장을 하면서 작품 보존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눈을 떴어. 셋방살이부터 이걸 다 갖고 다니느라 고생이 많았지. 이 작품들이 지금 처음 호강해보는 거야. 요즘 애들은 작품 해서 돈 생기면 아파트부터 늘리는데 안타까워. 내가 후학들에게 한번은 공개해야겠다고 생각했지.”

#“난 화면을 그냥 두지 않아”

전시에는 ‘격정’의 1970년대 작품 10여점과 ‘고요’의 세계를 보여주는 최근작 30여점이 걸린다. 그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접합’ 시리즈는 올이 굵고 성긴 삼베천(마대) 뒤에 물감을 발라 천의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낸 뒤, 천의 틈새로 삐져나온 물감을 주걱이나 칼, 붓 등으로 누르거나 긁어낸 작품들. ‘앞에서 그린다’는 회화의 관습을 거부한 그의 조형방식은 한국화의 배압법(背押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독창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나는 캔버스를 화면의 중심으로 끌어들였어. 화면을 그냥 두지 않으려고 일관되게 몸부림쳐왔지.” 그의 70년대 작품들은 철조망과 스프링 등을 소재로 군사정권의 억압과 폭력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민중미술의 원조는 내야. 그림에 전통(전두환 전 대통령), 노통(노태우 전 대통령)을 집어여키만 하면 민중미술이 아냐.”

#“하나씩 지워가는 과정”

200호 크기의 캔버스에 질감으로 색차를 표현하는 그의 모노크롬 작품들은 물감을 어지간히도 잡아먹는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물감을 제일 많이 쓰는 사람이야. 튜브 짜서 쓰고 그런 건 시시해서 안 해. 쩨쩨하잖아.” ‘하회마을의 담벼락 색’처럼 색상번호로 표시 안 되는 그만의 색은 그가 물감회사에 따로 주문해서 제작하는 것들. 작업도구도 대부분 직접 만든다. “남이 안 쓰는 색과 도구를 써야지. 서툰 척하지만 자기 표현을 정확히 하는 게 좋은 작가야.”

그는 작품이 단색조를 향해 가는 건 작가에게 고민이 많아졌다는 뜻이라고 했다. “아무것도 ‘컴프라치’ 할 수 없는 화장 안 한 맨얼굴이지. 젊을 때는 요란하게도 꽉 채우려 했지만, 지금은 하나씩 지워가고 있어.”

#“장관, 관장은 쌨지만 좋은 작가는 드물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통령 당선으로 그가 다시 ‘벼슬길’에 오르리라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서울시립미술관장 시절 백남준 비디오작품에 이 전 시장의 청계천 홍보 영상을 삽입해 구설에 올랐던 그는 미술계의 대표적인 ‘이명박 인사’.

“그건 당초 홍보영상으로 구입한 작품이었는데 기자들한테 너무 긁혔어. 국립현대미술관장이고 뭐고 다시는 안 할 거야. 작가는 작품으로 승부해야 돼.” 본인은 다 해놓고서 그러시면 어떡하냐고 묻자, “내가 다 해봐서 알아. 별 것도 없어.”

프랑스 생 폴 드 방스 미술관과 루앙 시립미술관, 독일 윈터갤러리 등에서 초대전 제안을 받은 그는 “이제는 작품만 할 것”이라며 "앞으로 해외 진출에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 “난 대단한 사람이야. 하하”

인정 많기로 소문난 그는 2001년 30년간 재직한 홍대를 정년퇴임하며 받은 퇴직금으로 상금 1,000만원의 하종현미술상을 제정했다. 어려웠던 젊은 시절, 간간이 주어지는 상금이 작업에 큰 도움이 됐던 기억 때문이다. “아깝지 않냐고? 바로 그 점이 내가 좋은 점이야. 그 돈이 얼마나 아까운 돈인데.(웃음)”

제1회 수상자인 재불작가 이영배에게는 프랑스로 건너가 직접 상금을 줬다. “내가 은행 가서 1,000만원짜리 수표를 딱 끊어가지고 우리 마누라랑 프랑스로 갔지. 어떡해. 비행기삯이 없어서 못 온다는데. 가서 거기 있는 우리 작가들 술도 한번 사주고 했는데, 한 친구가 와서 손을 붙잡더니 훌쩍이데. 우린 버려진 작가들인줄 알았는데, 너무 감동했다는 거야. 어때? 대단하지?” 자화자찬을 단점이 아니라 유머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데 그의 탁월한 재능이 또 한번 발휘된다.

그가 매년 주는 상을 받은 작가들은 세계무대의 어엿한 중견들로 성장했다. 2006년 수상자는 사진작가 김아타, 지난해 수상자는 조각가 조숙진. 미국에서 활동 중인 이 두 작가는 29일 오후 5시 전시 개막식에서 함께 상을 받는다. (02)720-1020.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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