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 양천구 양천문화회관 다목적홀은 평소와 달리 학부모들의 발길로 붐볐다. 한 특수목적고 전문학원이 초등생 학부모를 위한 영어교육 정책변화 설명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640개의 좌석은 설명회 시작 전 일찌감치 채워졌고,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학부모들은 복도에 앉거나 서서 강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학원 관계자는 “참가 신청접수가 금세 마감 됐다”며 “요즘 유행처럼 열리는 영어교육 정책 설명회는 빈자리를 찾기 힘들다”고 전했다.
특목고 전문학원 등 사교육기관이 새 정부의 영어공교육 강화 방안과 관련한 설명회를 잇달아 열면서 공격적으로 영어 사교육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영어교육강화와 사교육비 절감’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새 정부의 영어공교육방안이 오히려 영어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학원들은 요즘 ‘비상시국’을 맞고 있다. 새 정부의 사교육비 절감 방안에 따른 위기의식이 아닌, 시장 확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조바심때문이다. 특목고 전문 A학원의 B씨는 “새 정부의 영어공교육 강화방안으로 수강생이 늘어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며 “영어공교육설명회는 우리 학원에 자녀를 보내라고 학부모를 유혹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교육시장 영어 강사들의 몸값도 폭등하고 있다. B씨는 “우리 학원의 경우 영어강사 채용을 위한 전담팀을 상시로 가동해 입도선매하고 있다”며 “경쟁이 치열해 좋은 강사를 구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영어 말하기와 쓰기를 강조하면서 특히 원어민 교사나 유학파 강사들이 상종가를 치고 있다. 특목고 전문 C학원 관계자는 “문법과 읽기 전문 강사는 찬밥신세”라며 “말하기와 쓰기가 가능한 강사들의 스카우트 경쟁이 치열하다”고 밝혔다.
새 정부의 의도와 달리 영어사교육 시장이 팽창 조짐을 보이자 학부모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거주하는 한모(42ㆍ여)씨는 “일선 학교 영어 교사들의 실력에 대해 솔직히 믿음이 안 간다”며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 비용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영어공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하나 새 정부가 정책 집행을 지나치게 서둘러 사교육 확대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거용 상명여대 영어교육학과 교수는 “새 정부는 영어 못하면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못 간다는 인식을 과도하게 심어주고 있다”며 “영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결국 학원 가라는 이야기와 다른 것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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