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막, 덕팔이, 샤방이, 아빠번들, 오프로, 만두, 삼식이….
모르는 사람에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자다가도 귀가 번쩍 뜨이는 용어들이다. 사진, 또는 카메라 마니아들끼리 통하는 SLR세계의 인기 장비를 지칭하는 은어다. 10년 전만 해도 전문가들이나 만지는 물건이던 SLR(Single Lense Reflexㆍ일안 반사식) 카메라가, 이젠 두터운 향유층을 지닌 30, 40대 남자들의 장난감이 됐다.
SLR카메라가 대표적인 장비병 아이템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카메라는 영상을 2차원으로 포착하는 단순한 도구다. 하지만 이 도구가 디지털이라는 시스템의 혁명을 겪은 뒤부터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됐다.
찍고 결과물을 보기까지의 시간과 수고가 생략되면서, 사진은 가장 대중적인 자기표현의 수단이 됐다. 보고, 보여주는 데 익숙한 영상세대가 구매력을 지닌 30대가 되면서, SLR카메라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여기에 렌즈를 교환해 쓸 수 있다는 SLR의 특성이 ‘지름신’을 부르는 치명적 유혹이 됐다. 대부분의 카메라 입문자들은 보급형 보디(Body)에 번들로 끼워 파는 줌렌즈 하나로 사진을 시작한다.
사진을 좀 찍다보면 좀 더 밝은 렌즈에 대한 욕심이 생기고, 대구경의 렌즈를 할부로 구입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밝은 렌즈는 다시 신뢰도 높은 보디에 대한 ‘뽐뿌질’(구매욕구)을 부추긴다. 보유 장비가 중급 수준을 넘어 가면서부터는 스트로브 등 각종 액세사리도 사지 않고는 못 견딘다.
지름신의 유혹과 뽐뿌질에 수많은 남자들을 중독되게 한 결정적 원흉은 인터넷 동호회 사이트. SLR클럽(www.slrclub.com) 등 각종 사이트들은 사진 아마추어를 마니아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질투심을 유발하는 화려한 장비와 전투력을 샘솟게 하는 작품들, 장비의 유통을 쉽게 하는 중고품 직거래 코너는 단순한 호기심에 발을 담근 사람을 환자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30, 40대가 SLR카메라에 쉽게 빠져드는 또 다른 이유는 적정한 가격대다. 수천만원을 쉽게 뛰어넘는 오디오나 자동차 등과 달리, 싸게는 몇 만원부터 플래그쉽(각 브랜드의 최고가 모델)도 수백만 원이면 살 수 있다. 지름신을 버텨내다 결국 ‘카드신공’(신용카드 할부거래)을 펼치게 되는 까닭이다.
동호회 사이트에 가장 많이 오르는 사진은 갓 태어난 아기와 아내의 모습. ‘똑딱이’(콤팩트) 카메라로는 불가능한 화사한 가족의 모습은, 이제 막 가정을 꾸린 30대들이 SLR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드는 또 하나의 유혹이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