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삶은 속도에 예속된 삶이다.”
20세기초 기차, 자동차, 전화, 비행기와 같은 속도의 아이콘들이 출현한 이래 사람들은 속도의 원리를 내면화했다. 속도의 원리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삶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운전대를 잡은 채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며 출근을 하고, 사무실에 들어서면 인터넷에 접속한 뒤 분초를 다투며 주식거래 단말기를 두드린다. 휴가철에는 초음속 여객기로 휴양지로 날아가서 번지점프나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에 몸을 맡긴다. 속도는 인류의 보편적 신앙이 된 셈이다. 책은 중세로부터 현대까지 인류의 변화를 ‘속도’라는 프리즘으로 들여다보며 흥미진진한 문명사를 써내려간다.
자연이 분배해주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느림’을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가치로 찬양했던 중세적 질서의 균열은 상인들로부터 시작됐다. 시간을 자본으로 파악한 약빠른 상인들의 이데올로기야말로 ‘속도-경쟁-효율-성과’라는 근대적 세계관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책은 말한다.
예컨대 유럽에 공급될 해염(海鹽)을 전매하기 위해 소금 선적선이 도착하는 리브란트 항까지 가장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사환들을 찾아 경쟁시킨 힐데브란트 베킨후젠 같은 15세기의 독일상인으로부터 두 달마다 새로운 옷을 출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일 년에 두 번 신상품을 출시하는 베네통을 제친 1990년대의 미국 갭까지 ‘속도’라는 바이러스는 고금을 막론하고 상인들의 핏줄 속을 흘러다녔다.
그 바이러스의 전염력은 얼마나 위력적이고 불가항력적이었던가. 책은 그것이 어떻게 생산의 혁명, 운송의 혁명, 통신의 혁명, 스포츠의 혁명, 전쟁의 혁명, 예술의 혁명을 추동했는지를 살핀다. 저자는 이에 더해 이 같은 문명의 무한질주가 어떻게 사람들의 정서를 변화시켰는지를 감지한 이들을 찾아냄으로써 속도 바이러스의 본질을 파고들어간다.
1860년 근대적 속도의 상징인 증기기관차로 여행을 다녀온 뒤 “내가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의 절반은 어딘가 눈빛이 거칠다. 오늘날에는 누구에게서도 휴식과 조용함을 찾아볼 수 없다”고 갈파한 나이틀리 부인이나, 1907년 발표한 논문에서 “도시인들은 끊임없이 서두르는 가운데 정신적인 자극을 받아야 회복된다”고 통찰한 프로이트 같은 이들의 말은 유효한 힌트가 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의도는 가속화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좋든 나쁘든 가속도 원리가 노동과 생활 속에서 어떻게 자리를 차지하며 또 어떻게 변화시켜가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적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 바이러스는 필연적으로 비인간화를 동반할 수 밖에 없다는 비판적 견해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전쟁무기의 성능이 어떻게 가속화했는가를 다루고 있는 대목에서 지은이는 “칼과 창의 고전적인 맞부딪침 대신 1분당 1,800발을 내뿜는 기관총에 맞서다 최후를 맞는 현대 전쟁의 병사들의 죽음은 영웅적 성격을 상실한 진부한 기계적인 죽음이 됐다”고 탄식하고, 공장 가동속도의 향상이라는 명제 앞에 노동자들이 스톱워치를 든 감독관의 감시의 눈초리를 받으며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게 된 20세기 초반의 공업사를 써내려가며 “인간이라는 기계는 아직도 남아있는 근로시간의 틈을 계속 메우기 위한 실험도구이자 재료로 변해갔다”고 기술한다.
사람들이 이처럼 계속되는 가속화와 자극의 홍수를 어느 한계까지 견디어낼 수 있을 것인지, 가속도의 세계가 유토피아가 될 것인지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지 저자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책을 덮고나면 폭주기관차처럼 질주하는 20세기 문명의 파국을 예상하며 “재주 있는 사람은 알아서 피하라”고 했던 한 19세기 프랑스 시인의 묵시론적 예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끼게 되지나 않을까.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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