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도심에는 위인을 기리는 길이 여러 개 있다. 세종로, 을지로, 충무로, 퇴계로, 율곡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임금을 기리는 길이 하나, 장수를 기리는 길이 둘, 선비를 기리는 길이 둘이어서 그런대로 짜임새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종로구 세종로 1번지 광화문에서 139번지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전에 이르는 길이 600m의 가로가 세종로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건설할 때 뚫은 대로를 넓혀 오늘에 이르렀다는데, 예전에는 정부 관서인 6조와 한성부 등 주요 관아가 길 양쪽에 있다 하여 육조거리라고 했다. 일제 강점기에 광화문통이라고 일본식으로 불렀으나 광복이 된 뒤인 1946년에 일본식 지명을 바로잡을 때 세종의 시호를 따서 세종로로 개명했다.
■ 위인이름 넣은 가로명은 좋지만
중구 태평로 1가 31번지 서울시청에서 을지로 7가 1번지 동대문운동장에 이르는 가로를 을지로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구리개라고 했으나, 일제 강점기에 황금정(黃金町)으로 부르다가 1946년에 을지문덕 장군의 성을 따 을지로라고 이름을 고쳤다.
충무로는 중앙우체국이 들어선 중구 충무로 1가 21번지에서 극동빌딩을 지나 충무로 5가 8번지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일제시대에는 본정통(本町通)이라고 일컬었으나 1946년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시호를 따서 충무로로 이름을 바꾸었다.
퇴계로는 중구 봉래동 2가 서울역에서 동쪽으로 회현동 필동 쌍림동 등을 지나 광희동에 이르는 가로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야마토마치통(大和町通)이라고 했다가 신세계백화점에서 충무로 2가 부근까지를 확장하여 소화통(昭和通)이라고 했다니까 일본식 거리이름 가운데서도 가장 일본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53년 환도 이후 길을 새로 확장하고 이황의 호를 따 퇴계로로 이름 지었다.
율곡로는 종로구 중학동 38-1 동십자각 앞에서 시작하여 종로 6가 69 흥인지문 앞에서 끝나는 가로다. 이이를 기리기 위해 그의 시호를 따 1981년에 율곡로로 이름 붙였다.
이런 거리이름들은 종루(鐘樓)가 있다고 해서, 청계천이 흐른다고 해서, 또는 남대문이 있다고 해서 갖다 붙인 종로니 청계천로니 남대문로니 하는 것보다 격이 한 급은 위로 느껴진다. 거리이름에 역사의 숨결이 녹아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 거리를 걸으며 옛 위인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위인은 지금도 그 길에 서서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길 이름을 위인의 시호나 성을 따서 지었다면 그 길에 이제 이름에 걸맞은 상징물을 세우거나 공원을 조성하는 방안을 서둘러야 한다. 거리 이름을 지을 무렵에야 그럴 여유가 없었겠지만 이제 시장이 도시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밝힌 상황에 이르렀으니 위인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인 거리에 해당 위인의 동상이나 조형물을 세우고 또는 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첫 작업으로 서울시는 세종로의 충무공 동상을 충무로 어딘가로 옮기는 일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세종로가 세종대왕의 시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면 그 길에 들어서자마자 세종대왕을 느끼게 해야 하고, 충무로가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길이라면 충무로에서 충무공을 생각하게 해야 한다. 세종로가 시작되는 광화문 네거리에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 서 있고 정작 충무로에는 충무공을 기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 ‘세종로의 충무공’은 안 어울려
세종대왕이 살아 계신다면, 나라를 지킨 장수더러 비켜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당신을 기리는 길 한 복판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충무공을 보고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 느낌은 세종대왕보다 충무공이 오히려 더할 게 뻔하다. 이제 세종대왕이나 충무공이 그런 심리적 부담을 훌훌 털어버리게 할 때가 됐다.
김민환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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