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두 함파테 바 지음ㆍ이희정 옮김북스코프 발행ㆍ576쪽ㆍ1만5,000원
아프리카 말리의 작가 아마두 함파테 바(1900~1991)의 유작이자 특이한 자서전이다. <왕그랭의 이상한 운명> (1974) 같은 소설을 쓸 때도 스스로를 작가 아닌 증인이자 해설자로 부르곤 했던 바는 “발레웰 디코 아저씨(부친의 친구), 니엘레(보모), 베이다리(집사),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 덕분에 이 책을 쓸 수 있었다”(81쪽)며 다시금 ‘기록하는 자’를 자임한다. 왕그랭의>
여든 넘어 썼음에도 놀랍도록 세세한 기억으로 가득한 이 책은 그 자체로 1860~1920년대 서아프리카 어느 곳에 관한 흥미로운 지역사이자 풍속사다. 작가가 문자 대신 구전(口傳)의 전통을 물려받은 세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서 이 책을 ‘특이한 자서전’이라 한 것은, 자서전의 문장이 대개 ‘나’를 주어로 취하기 마련인데 반해 이 작품은 ‘나’ 아닌 무수한 이름들이 문장 앞머리를 장식하기 때문이다. 하여 이야기는 ‘나’로 수렴되는 대신 수다한 사람들을 향해 흥겹게 뻗어나간다. 이성적 단독자로 세계와 대면하려는 서구 근대적 주체와 달리, 인간ㆍ자연ㆍ신 등 어떤 타자와도 기꺼이 연대하며 자아의 경계를 지워가는 아프리카적 존재의 매력이 물씬하다.
7장의 이야기 중 1~3장은 선대(先代)의 역사에, 나머지 네 장은 스무 살까지의 자기 성장기에 할애됐다. 앞부분에서 바는 지금 같은 국경선이 없던 19세기 중반 부족 간 복잡다단한 전쟁과 연대의 틈바귀에서 자신의 출생 내력을 찾는다.
프랑스 식민통치 역사와 포개지는 뒷부분에선 어떤 사관(史觀)으로도 섣불리 재단할 수 없는 그 시절 천연한 풍경 위, 한 아프리카 소년을 길러낸 낯설고도 유쾌한 경험들이 수놓여 있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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