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용
―물양귀비 무늬 창포 같은 수생 식물과 연꽃을 각각의 실험 용기 속에 담고, 그 물에 오염 물질을 섞은 후 물고기를 넣었는데, 다음날, 다른 용기 속의 물고기는 힘겹게 아가미를 헐떡이다가 죽어 떠올랐지만, 연꽃이 담긴 물속의 물고기는 유유히 지느러미를 흔들고 있었다. 아, 연꽃의 저 자정능력이라니!
시커멓게 기름이 뒤덮힌 태안 바닷가에서, 기름을 퍼내는 사람들을 본다
모래밭에 엉겨 붙은, 갯바위에 달라 붙은 기름을 닦아내는 손들을 본다
석유 문명이 뱉은 가래처럼 끈적끈적한 타르 덩어리가 지워질 때,
그 속에서 말갛게 드러나는 바다의 속살이 그렇게 고운 줄 몰랐다
맑게 씻긴 돌들의 얼굴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석유 문명을 이루어 내었지만, 석유 문명에 질식해 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도
사람이라는 사실이, 생각의 아가미를 꿰뚫고 놓아 주지를 않지만
보라, 아직은 사람이 연꽃이다
죽음의 바다에서 생명을 살아있게 하는, 연꽃이다
▦1945년 부산 출생 ▦1988년 <현대시사상> 통해 등단 ▦시집 <버려진 사람들> <몽유 속을 걷다> <도장골 시편> 등 ▦천상병문학상, 노작문학상 등 수상 도장골> 몽유> 버려진> 현대시사상>
<저작권자>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