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기득권 정치에 맞서는 과정에서 얻은‘클린’이미지를 강점으로 내세워온 미 공화당 존 매케인(72) 상원의원이 자신의 이미지를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 있는 의혹에 직면했다. 미국의 유력지 뉴욕타임스(NYT)가 21일 매케인 의원이 미모의 금발 여성 로비스트와 부적절한 관계에 있었음을 시사하는 보도를 함으로써 촉발된 파문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매케인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매케인은‘이단아’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로비 및 정치자금 개혁에 앞장서온 강직함이 바탕이 돼 사실상의 공화당 대선후보로 우뚝 선 만큼 그 역풍이 어떠할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매케인측은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공화당에 반대하는 자유주의 성향을 보여온 NYT와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런데도 NYT는 매케인과 여성 로비스트 비키 아이스먼(40)의 관계를 다룬 기사는“통상의 보도준칙을 따른 것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매케인의 최고 선거참모였던 존 위버가 1999년 워싱턴 중앙역인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통신회사 로비스트 아이스먼을 만나 매케인 의원에게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것이 의혹 제기의 가장 중요한 근거다. NYT는 매케인과 아이스먼이 애정 관계에 있었다는 심증을 더욱 굳혀주기 위해 익명의 다른 측근을 인용,“두 사람의 관계가 위태로워보여 매케인에게도 직접 신중한 처신을 요구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당시는 매케인이 2000년 대선을 준비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위험 요소를 미리 제거하려 했다는 것이 NYT의 시각이다.
이 신문은 매케인과 아이스먼이 애정 관계를 바탕으로 특혜를 주고 받는 사이였음을 암시하는 정황들을 제시했다. 현재 이온미디어네트웍스로 이름을 바꾼 팩슨 통신사의 로비스트였던 아이스먼은 당시 매케인의 모금행사장, 의원 사무실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고 수 차례 매케인이 회사 전용기를 쓸 수 있도록 주선했다. 팩슨이 수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매케인에 기부했고, 당시 상원 상무위원장이었던 매케인은 팩슨의 피츠버그 텔레비전 방영권 매입 문제를 신속히 처리해 달라는 두 통의 편지를 미 연방통신위(FCC)에 보냈다는 게 NYT의 주장이다.
NYT는 그러나‘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매케인은 보도 직후 부인 신디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나는 국민의 믿음을 배반하는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신디도 “남편은 가족에게 신뢰를 줘온 위대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옹호했다. 매케인의 핵심 선거참모인 찰리 블랙은 “NYT와 전쟁에 나설 것”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위버는 보도가 나온 이후 “매케인과 관련해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 아이스먼이 매케인과 특별한 관계인 것처럼 말하고 다니는 것이 문제였다”고 NYT의 보도 태도를 문제삼았다.
일부 선거 전문가들은 “이번 보도가 공화당의 전통적 보수층이 매케인을 중심으로 뭉치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들은 “공화당 보수층은 매케인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NYT를 보다 더 증오한다”고 말하고 있다.
폭스 뉴스 등 몇몇 보수 언론이 NYT의 보도 경위 및 시점을 문제삼으면서 이번 사건은 보도 윤리를 둘러싼 언론의 대리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폭스 뉴스는 “증거가 없고 동기가 불순하다”고 비판했고 한 보수 논객은 NYT를‘사악한 뱀’에 비유하기도 했다.
NYT의 보도가 인테넷상의‘황색 저널리즘’으로 꼽히는 드러지 리포트의 지난해 12월 보도를 재탕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처럼 매케인 진영과 보수 언론의 공세가 거세지만 NYT 등 언론의 후속 보도로 새 사실이 드러나거나 아이스먼이 불리한 ‘폭로’에 나설 경우, 매케인은 다잡은 공화당 후보 지명권을 놓아야 할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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