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배제의 정치는 실패한다

입력
2008.02.25 00:31
0 0

물론 노 대통령 주변에서 외롭다는 탄식이 나온 적은 없다. 말이나 행동은 오히려 그 반대다. 퇴임 대통령답지않게 막판까지 소신을 밝히더니 물러난 후에는 재단이나 연구소를 만들 것이라고 한다. 굽히지 않는 의지마저 읽혀진다.

그래도 노 대통령은 외로울 것 같다. 아무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거창한 구상을 한다 해도 떠나는 권력자의 속마음이 어찌 허망하지 않겠는가. 비록 그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감정적, 정치적 낙인 찍기"라고 항변하지만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고통을 느끼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다. '마의 벽'이었던 주가지수 1000을 훌쩍 넘어 2000을 돌파하기도 했고 수출은 3,000억 달러를 넘었고 경상수지는 5년 연속 흑자였으며 물가는 3% 이내로 안정됐다. 성장동력 약화, 양극화 심화에 박한 점수를 준다 해도 지표로만 보면 "망했다"는 비난은 과할 듯 싶다.

■ '실패한 대통령'의 그림자

하지만 국민은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비난에 동조했다. 대선 결과가 이를 잘 말해준다. 노 대통령이 아무리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외쳐도 국민은 고개를 다시 돌리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국민의 마음을 얻고 그 민심을 국정의 추진력으로 삼는다는 통합의 정치 대신 배제의 정치를 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선전이 전개되던 2002년 9월 한 강연에서 느닷없이 "미국 안 갔다고 반미냐, 반미면 어떠냐"고 말해 미국을 놀라게 했다. 말 한마디로 우방인 미국을 배제한 것이다.

2003년 9월 전남 언론인과의 오찬에서는 "호남 사람들이 내가 예뻐서 찍었느냐, 이회창 후보가 싫어서 찍었지"라고 말해 호남을 처참하게 만들었다.

그 뒤에도 배제의 정치는 계속됐다. 기업인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았고 강남과 부자를 적대적으로 대했다. 나중에 기업인의 역할을 재평가했지만 한 번 떠난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이렇게 미국을, 호남을, 기업인을, 부자를 배제하다 보니 어느 순간 다수의 국민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홀로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을 것이다. 문제는 배제의 정치가 대통령 혼자만의 고독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국정의 실패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제 사흘 후면 노 대통령은 떠난다. 그러나 우울하게도 배제의 정치, 그 불길한 그림자가 이명박 당선인에게서도 언뜻언뜻 보인다.

정부조직 개편 만해도 그렇다. 작은 정부의 취지에 많은 국민들이 지지하면서도 개운치 않은 느낌을 갖고 있다. 이 당선인이 정부나 공무원을 기업을 규제하고 압박하는 '나쁜 집단'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인보다 더 나라를 생각하고 공익을 위해 애쓴 공직자가 어찌 없겠는가. 그들을 고려해 "나라를 위해 여러분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호소할 수는 없었을까. 대상이 아닌 주체로 대하자는 것이다.

영어도 그렇다. 그 중요성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그러나 과외 부담을 걱정하는 학부모들을 아무 것도 모르는 반대자들로 몰아갔다. 영남 위주의 청와대 인선도 충청과 호남에게는 배제의 정치로 다가갔고 부자들로 가득한 초대 내각은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 5년 뒤 모습 미리 살펴야

노동문제에서도 법과 원칙을 세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예 민노총과 대화조차 하지 않는 자세는 불신과 대립을 증폭시킬 수 있다.

유럽의 3등국가에서 세계 일류로 발돋움한 아일랜드의 신화도 노조 농민 재계 정치권이 손잡은 사회적 대타협에 힘 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출자총액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감세 등 이 당선인이 예고한 정책에서는 서민이나 중소기업, 노동계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배제의 정치가 누적되면 대통령과 국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때론 소명의식을 갖고 정면돌파를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지나친 자기확신이 이끄는 배제의 정치가 범람한다면 5년 후 삽화는 다시 우울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영성 부국장 leey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