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도심 마리나만 입구에는 아주 독특한 외양의 건물이 있다. 고슴도치가 웅크리고 있는 듯한 형상(나중에 알고 보니 열대과일 '두리안'을 형상화한 것)의 이 건물은 싱가포르가 자랑하는 오페라하우스 '에스플러네이드'이다. 2년 전 취재차 둘러본 이 건물 내부시설은 다른 오페라하우스와 큰 차이가 없으나 안팎의 풍경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로비에 모여 작은 음악회나 연주회를 열고, 직장인들이나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이 해변 산책로를 따라 거닐며 머리를 식히는 모습('에스플러네이드'라는 명칭도 해변이나 호숫가의 산책길이라는 의미의 보통명사를 고유명사로 삼은 것)에서 삶의 여유와 문화적 향기가 물씬 풍겼다.
서울시가 한강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고 한 지 벌써 3년이 다 돼 간다. 2005년 부지를 구입해 놓고 이듬해 국제현상공모를 통해 설계까지 발표했으나 이 사업은 갈수록 꼬이는 느낌이다.
작가인 프랑스 장누벨의 설계안이 노들섬 경관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무성한 데다 결정적으로 그의 작품이 앞서서 다른 현상공모에 출품됐던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본 도쿄 오바이다 섬에 건립되는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 설계공모에 내놓았던 작품이라는 점에서 민족적 반감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장누벨은 "두 작품은 콘셉트가 비슷하긴 하지만 별개"라며 펄쩍 뛰고 있지만 의혹의 눈초리는 가시지 않고 있다.
그가 명성만 믿고 공모전에 탈락한 작품을 그대로 제출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작가는 현재 책정된 설계비 130억원보다 3배 가까이 요구하고 있다니 은근히 부아까지 치민다.
작가도 답답했던지 최근 서울을 방문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직접 설명했지만 돌파구를 찾지는 못한 듯하다. 서울시로서도 국제현상공모를 통해 확정한 작품을 일방적으로 변경하거나 없던 일로 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그렇다고 여론을 외면하고 당초 설계대로 진행시키기도 어려우니 말 그대로 진퇴양난인 셈이다.
지금까지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사업은 건립타당성이나 환경훼손문제 등으로 논란이 있었으나 이제 어느 정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설계 문제로 발목이 잡힐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하긴 오페라하우스의 대명사인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도 설계문제로 곡절이 많았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설계를 바꾸는 과정에서 오히려 건축비가 당초 예정된 350만달러에서 5,700만달러로 불어났고 건설 기간도 16년이 걸렸다.
호주정부는 공사 도중인 1966년 설계변경 지시를 따르지 않는 덴마크 건축가 외른 오베르그 우드손 대신에 자국출신 건축가 3명을 시켜 건물을 완성시켰다.
당시에 "비틀즈더러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을 완성하라는 것과 같다"는 등 비난이 쏟아졌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설계를 뒤집어 오늘날의 랜드마크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감정이 상한 우드손은 개관식에는 물론, 그 뒤로 한번도 찾지 않았다고 한다.
노들섬 오페라하우스를 진척시키려면 현재로서는 작가를 설득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원점에서 시작하는 것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공청회 등 공론화 과정을 다시 한번 거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공연에 빠져 있다가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산책하고, 송년음악회를 감상한 후 해돋이까지 즐길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까.
최진환 사회부 전국팀장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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