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숭례문이 불타 무너진 지 10여일 동안 다들 무엇을 했기에 이번엔 광화문 정부 중앙청사에서 불이 난단 말인가. 국보 1호 숭례문이 우리 문화와 역사의 상징이라면 중앙청사는 정책과 행정의 산실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 관청이다. 이런 식이면 어디에든 불이 나지 않을까. 숭례문에 이어 중앙청사에 불이 났으니 민심이 흉흉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중앙청사 화재는 그 자체로는 엄중한 사건이 아닐 수 있다. 정확한 원인이야 확인돼야 하겠지만 일단 방화 등 국가적 반감의 표출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낡은 건물에서 생기기 쉬운 누전이나 관리소홀에 의한 실화의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초기 진화가 제대로 이뤄져 인명 피해도 없었고, 화재로 소실된 국가적 자산도 많지 않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청사 관리는 물론 불이 번진 과정이 숭례문 화재와 흡사한 대목이 많아 공무원들까지 '국보 1호의 교훈'을 전혀 인식하지 않고 있음이 확인됐다. 뒤늦게 현장에 나타난 박명재 행자부 장관이 "오래 된 건물이라 스프링클러가 없었다"고 말했을 만큼 중앙청사가 화재에 무방비였음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1967년 당시 최첨단 기술로 신축된 이 건물은 이후 수 차례 리모델링을 거쳤으나 기본적인 화재방지시설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나마 설치된 화재 자동감지 및 경보시스템이 제대로 역할을 못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1999년 공무원의 부주의로 불이 나 중요한 공문서를 태워먹은 뒤에도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은 까닭을 알 수 없다. 고위 공무원들이 상주하는 중앙청사가 이러니 길거리에 있는 국보 1호가 그 동안 건재했던 점이 천행이라고나 할 만하다.
숭례문 소실 이후 심각하게 대책을 궁리하고 있다던 정부가 원초적 관리소홀로 '행정 1번지'를 태운 사실에 어이가 없다. 정부 교체기에다 조직 개편 등으로 해이된 공직 분위기 때문이라거나 피해가 적은 사소한 실화라고 얼버무려선 안 된다. 모든 부문에서 문제점을 규명해야 하고, 숭례문 화재 이상의 책임추궁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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