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누전으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한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는 하루종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불은 5층에서 났지만 유독 가스와 분진이 중앙청사 전체에 퍼진 탓에 각 부처 공무원들은 이날 일에는 손을 제대로 대지 못하고 환기, 청소에 매달리는 모습이었다.
이날 화재 피해를 가장 심하게 입은 곳은 불이 난 5층과 위아래인 6, 4층이었다. 코를 찌르는 매캐한 유독 가스와 시커먼 분진이 천정과 복도를 뒤덮고 있었고, 박스와 마대자루에 담긴 서류 뭉치들이 복도에 널브러져 있었다.
5층은 출입이 완전 통제돼 직원들이 1층 커피숍을 전전하는 등 메뚜기 근무를 하고 있었다. “물이 꽉 차서 말도 마. 어디에 가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전화를 하는 국조실 공무원도 눈에 띄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오늘 총리 인사청문회가 있어 어수선한데 불까지 났다”고 말했다.
통일부가 쓰는 4층은 5층에서 뿌린 소방수가 천장을 타고 흘러 바닥이 흥건한 물바다가 됐다. 화재 정밀 감식 작업과 추가 전기 누전의 위험 때문에 비상 전원을 제외한 모든 전원도 차단됐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천정이 무너지고 물이 쏟아져서 깜짝 놀랐다”며 “임시로 장관 집무실 등을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으로 옮겨놓은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오전6시40분에 출근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어떻게 이런 사고가 나나”며 말을 잇지 못했다. 통일부 직원들은 대부분이 남북회담사무국으로 ‘피난’을 가기도 했다.
이날 공무원들이 화재 수습에 몰두하면서 업무 공백도 심각했다. 행자부 한 관계자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 모든 회의와 일정이 중단됐다”며 “실무국장만 새로 온 장관에 업무보고를 하러 간 상태”라고 말했다.
문서 소실 우려도 적지 않았다. 5, 6층 일부 사무실에서는 문서 분류가 되지 않은 각종 서류 뭉치들이 수십 여대의 박스와 마대자루에 담겨 나왔고, 청소직원들이 그냥 버리려는 것을 기자들이 막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1년 전 지방자치단체서 파견돼 올라온 행자부 직원은 “처음 출근했을 땐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며 “급한 대로 서류와 컴퓨터 등 각자 사무용품은 먼지만 닦은 후 박스에 이름을 적어 복도에 내놓았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새 정부용으로 만든 업무보고 준비 자료들의 잘못됐을 수 있다”며 “만들던 보고서야 힘을 들여 또 작성하면 되지만 이미 공인된 문서들이 사라지면 어떻게 복구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각종 사무기기들의 손실이 크다”며 “인사 예산 회계 자료는 지난해 3층 문서고로 옮겼고, 올해 자료는 전자결재 시스템 도입으로 다행히 큰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현정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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