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해도 월급통장은 새내기 직장인의 재테크 목록에 끼지도 못했다. 초라한 이자(연 0.1~0.2%)에 은행마다 특색도 없어 그저 돈이 들고나는 통로에 불과했다. 그러나 은행 월급통장의 50배에 달하는 이자(연 5%대)를 무기로 내세운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가 지난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지형도가 바뀌었다. ‘월급통장 재테크’란 용어도 등장했다.
공격을 당하면 반격이 있는 법. 최근 은행 월급통장도 진화하고 있다. 최대의 약점인 금리 경쟁력을 CMA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수수료 면제 등 각종 부가 혜택을 얹어 체질을 강화했다. 실제 은행의 신형 월급통장은 CMA에 잃었던 영토를 회복 중이다. 고객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재테크의 첫 단추를 월급통장으로 꿰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결정의 기준은 자신의 금융거래 습관 및 향후 자금 운영방향과 맞물려 있다. 증권사 CMA와 은행의 신형 월급통장을 비교하면 그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 은행월급통장
은행의 신형 월급통장은 대부분 ‘스윙계좌(Swing Account)’다. 일정금액 이상을 별도의 계좌로 자동이체(swing)해 높은 이자를 주는 방식이다. 월급통장 이자는 0.1% 수준이지만 별도계좌는 4~5%까지 나온다. 최고 금리를 제공하는 곳은 우리은행(연 4.0~5.3%), 평균적으로 이자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은 하나은행(연 5.0~5.2%)이다. 이 정도면 CMA에 필적할만하다.
더구나 대출을 받게 되면 거래실적에 따라 이자를 깎아준다. 비록 소수점 아래의 적은 비율이지만 대출금액이 클수록 돈을 아낄 수 있는 여지도 커지는 셈이다. 각종 수수료도 면제된다. 다른 은행으로 이체할 때 1,000원 정도의 수수료가 들어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수료 면제는 무시 못할 혜택이다.
이쯤 되면 ‘고금리+추가 혜택’으로 손색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치명적 약점이 도사리고있다. 스윙계좌는 ‘일정(설정)금액 이상’을 별도의 계좌로 넘겨야 하기 때문에 월급통장에 적어도 100만원, 많게는 300만원 이상 들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설정금액이 100만원이라고 가정하고, 월급통장에 110만원이 있다면 10만원만 고금리(5%) 혜택을 받고 100만원은 기존 월급통장 금리(0.1%)가 적용된다. 수시로 돈이 빠져나가는 월급통장의 특성상 고액연봉을 받거나 하릴없이 돈을 월급통장에 쌓아두지 않는 한 고금리 혜택은 ‘그림의 떡’인 셈이다.
기업은행은 이를 의식해 이 달초 스윙형 월급통장(아이플랜 통장)의 설정금액을 30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낮추기까지 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설정금액은 100만원이다.
국민은행은 오히려 ‘역 발상’ 상품을 내놓았다. 국민은행이 최근 내놓은 ‘KB스타트’ 통장은 젊은 직장인의 월급계좌 잔액이 평균 35만원이라는 점에 착안, 100만원 이하 잔액에 대해서만 연 4% 금리를 준다. 다른 은행의 스윙형 월급통장과 반대로 100만원이 넘는 금액에 대해선 0.1%가 적용된다. 가입대상을 18~32세로 제한해 새내기 직장인이나 대학생을 겨냥한 것도 특징이다.
■ 증권사 CMA
금액에 상관없이 하루만 맡겨도 연 5% 이상의 이자를 준다는 전략으로 바람몰이를 했던 증권사 CMA도 은행 월급통장의 반격에 맞서 새로운 부가서비스를 장착하고 있다. CMA는 설정금액이 없어 고금리혜택의 문턱은 낮은 반면, 은행처럼 대출이나 수수료 면제 등 다양한 추가 혜택을 줄 수 없었던 게 사실.
CMA는 무엇보다 은행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마이너스 대출 기능을 도입하고 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의 CMA가 2,000만원 한도의 마이너스 대출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다른 증권사도 신용대출 서비스를 탑재하고 있다. 은행은 없는 자산관리 상담 강화, CMA와 펀드의 연계 등도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과 아직은 은행을 이용하는 것보다 불편하다는 점은 CMA의 아킬레스건이다. 현재 원금과 이자가 보장되는 CMA는 동양종합금융증권(보장한도 5,000만원) 정도다.
살펴본 바대로 월급통장 재테크의 핵심은 평균 잔액이다. 월급통장에 대략 얼마의 돈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달라지게 된다.
이런저런 조건 따지지 않고 오로지 이자만 생각한다면 CMA가 여전히 매력적이다. 또 은행 예ㆍ적금보다 증권사의 투자상품에 눈길이 간다면 상대적으로 CMA가 유리하다. 반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있거나 앞으로 받을 계획이 있다면 은행 월급통장을 이용하는 게 금리 할인, 각종 수수료 면제 등 비용절감 차원에서 나을 수 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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