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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은총재의 辛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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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은총재의 辛라면

입력
2008.02.2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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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은 우리나라 라면 역사에 획을 그은 해로 꼽힌다. 그 해 10월 출시된 신라면 때문이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매운맛'을 키워드로 삼아 농심이 1년 이상의 연구개발 끝에 내놓은 이 야심작은 기존 제품의 2배 가까운 가격과 원형 모양으로 처음부터 화제를 낳았다.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이라는 카피와 함께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라면을 먹는 광고의 호소력도 컸다. 그로부터 30여년. 신라면은 100여 종의 제품이 난립한 레드 오션 시장에서 '나홀로 25%대'의 점유율을 자랑하며 연간 9억 개 이상 팔린다.

▦ 라면의 고급화를 내세워 가격 인상을 선도한 신라면은 해외에서도 알아 주는 대표적인 국민브랜드로 성장했다. 1963년 우리나라에 라면이라는 요상한 식품을 처음 출시한 삼양식품의 위세에 눌려 맥을 못 추던 롯데공업(농심의 전신)이 75년 개발한 농심라면과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카피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고 80년대에 너구리, 안성탕면 등의 잇단 히트작을 만든 혁신의 소산이다.

71년 시판된 새우깡과 함께 농심의 '쌍둥이 옥동자'로 자리잡은 신라면은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격변동이 있을 때마다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 그 신라면이 모처럼 주요 언론의 1면 혹은 2면에 나왔다. 현재 650원인 소매가격이 20일부터 750원으로 15.4% 인상된다는 뉴스다. 짜파게티 큰사발면 새우깡 등 다른 스낵류도 모두 100원씩 오른다. 선도기업인 농심이 바람을 잡았으니 다른 업체 제품 값이 오르는 것도 시간문제다.

급기야 어제와 그제 대형 마트와 동네가게에선 라면 사재기 열풍이 불었고 일부 매장에선 매진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주변 식당의 음식과 마트의 과자ㆍ채소의 가격이 슬그머니 올라도 그럭저럭 참던 사람들도 라면 값 인상은 참기 어려웠던 것 같다.

▦ 당황하는 사람 중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끼여 있다. 신라면이 물가지수를 산출하는 대표적 품목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인 그는 지난 주 콜금리를 동결하면서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을 통해 '호민관' 역할을 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민관은 고대 로마 시절 평민의 권리를 대변하기 위해 평민계층에서 선출된 권력자다. 물가 불안의 최대 피해자가 서민들인 만큼, 호민관처럼 물가 관리에 최우선의 역점을 두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1월 3.9% 인상됐던 물가 오름세는 갈수록 거세다. 이 총재가 신라면을 먹기 싫은 이유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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