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피델’의 쿠바는 어디로 갈까.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동생 라울 카스트로 국방장관이 그동안 순조롭게 권력 이양을 해왔기 때문에 급격한 체제 변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라울이 형보다 실무에 밝고 실용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침체된 경제 회복을 위해 일정 정도의 개혁ㆍ개방 조치가 단행될 것이란 전망이다.
라울 장관은 이미 1997년 제5차 공산당 대회에서 피델의 후계자로 공식 지명됐고 피델이 2006년 장 파열로 쓰러진 후부터는 국가평의회 의장직 대행을 맡아 사실상 쿠바 통치를 이어와 당장 쿠바에 변화의 바람이 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라울은 형 피델이 시에라 마스트라산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던 시절부터 함께 혁명활동을 해온 오래된 동지이자 든든한 오른팔이었다. 그는 민족주의에 가까웠던 형보다 먼저 사회주의에 투신했을 만큼 이념면에서 더 강경파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라울이 오랫동안 쿠바를 실무적으로 관리해온 행정가라는 점에서 쿠바가 당면한 경제 문제에 대해 보다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다. 타임지는 “피델이 카리스마적 지도자라면 라울은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조직 관리자”라며 “소비에트 붕괴 후 경제난에 시달릴 때 외국 관광객 개방, 잉여 농산물 판매 등 실용주의적 정책을 도입한 것도 라울이었다”고 전했다.
라울 장관도 그동안 피폐해진 쿠바 경제의 어려움을 시인하면서 변화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시사해왔다. 전문가들은 라울이 결국 일당 독재 등의 사회주의적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민영화 확대, 외국인 투자 규제완화 등의 중국식 경제 개혁을 시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라울이 쿠바 경제의 최대 걸림돌인 미국의 경제봉쇄를 완화하기 위해 대미 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미국은 카스트로 형제가 권좌에 있는 한 무역제재 해지를 금지하는 법안을 두고 있어 대미 관계 개선은 라울의 의지만으로 쉽지 않은 상태다. 조지 W 부시 국 대통령은 19일 “카스트로 사임으로 인한 변화가 민주적 과도기로 접어드는 시발점이 돼야 한다”면서 정치범 석방과 공정한 선거를 강조했다. 미 국무부도 권력이 독재자에서 독재자로 이동한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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