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혁명의 상징 피델 카스트로가 50년 만에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나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세기를 얽맨 이념과 체제 대결이 끝난 뒤에도 사회주의 체제를 굳게 지키며 '사악한 독재자'와 '탁월한 혁명가'의 엇갈린 평가를 받은 카스트로는 생전에 권력을 이양, 세기적 혁명가의 면모를 과시했다. 외부세계도 카스트로 혁명의 의미를 되새기며 앞날을 주시하고 있다.
1959년 카스트로가 친미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이래 적대와 봉쇄를 지속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핍박 받는 쿠바 민중의 장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도 민주주의 발전을 기대한다고 논평했다.
그러나 유럽 언론과 전문가들은 쿠바 국민은 체제와 삶에 큰 불만이 없으며, 새 지도부도 점진적 변화와 개방을 추진할 것으로 분석했다.
전망이 엇갈리는 것은 쿠바 혁명을 상반되게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 미국은 자신의 앞 마당에 들어선 카스트로 체제를 용납할 수 없었다. 피그만 침공 실패와 미사일 위기를 겪고서도 적대를 지속하고, 혁명의 현실을 암울하게 그려 실패한 사회주의 실험의 본보기로 내세운 이유다.
그러나 혁명 전 쿠바는 독재정권과 결탁한 미국 자본의 퇴폐 향락 산업이 번성했을 뿐, 민생은 도탄에 빠진 상태였다. 혁명을 이끈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중남미와 서구 사회주의의 우상이 된 배경이다.
특히 카스트로는 고립 속에서도 체제와 민생을 보전, 발전시켰다. 경제는 1인당 GDP(국내총생산) 3,000 달러로 낙후했지만, 무료 교육ㆍ의료 체계는 국제적 모범사례로 평가된다.
카스트로는 안정 속에 변화를 꾀할 수 있도록 생전에 권력을 넘긴 것으로 분석된다. 쿠바는 그가 병석에 누운 지난해 유엔 인권협약에 가입하고 유럽연합(EU)과 교류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쿠바의 장래는 미국의 변화에 달린 것으로 관측된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정부의 방침을 뒤집고 봉쇄를 강화했었다. 유럽 언론은 북한 이란 쿠바와의 대화를 공약한 민주당 오바마 후보의 대선 승리 여부가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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