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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학가 졸업식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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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학가 졸업식 유감

입력
2008.02.2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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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의 졸업식 풍경이 해를 거듭할수록 수상해만 간다. 물론 한 교실에서 10명 중 1명이 가까스로 대학에 들어가던 시절과 대학 진학률이 80%를 훌쩍 넘어선 요즘 시절, 대학 졸업의 의미가 똑같을 수는 없다 해도, 쉽게 잊혀지거나 선뜻 잃어버려선 안 될 졸업의 의미가 너무 빠르게 퇴색되고 걷잡을 수 없이 변질되는 건 아닌가 하여 마음이 많이 쓰인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자식 뒷바라지에 등골이 휘신 부모님께 졸업 가운 입혀 드리고 학사모(學士帽) 씌워 드린 후 넙죽 엎드려 절하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던 단골 풍경이었고, 자식 모르는 사이에 백지장처럼 가벼워지신 부모님 등에 업고 교정을 뛰어다니던 아들들 모습 또한 콧등을 시큰하게 하던 장면이었다.

■ 이젠 보기 어려운 '눈물과 감사'

집안 어르신 말씀이 옛날에도 자식들 교육시킨 햇수를 모두 합해 100년이 넘으면 마을에서 큰 잔치를 해주는 풍습이 있었다신다. 그러고 보면 오늘의 대학 졸업은 대학문을 나서는 당사자 못지않게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해온 부모님들께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게다. 부모로선 자식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 자부할 수 있는 징표 아니겠는지.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엔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울려나오던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노래만 들어도 절로 눈물이 맺히곤 했는데, 요즘 졸업식 풍경은 너나없이 신세대의 신나는 이벤트 장으로 변모한 듯 하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졸업식이 진행되는 시간 동안이나마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해보는 진지함 대신, '결혼은 여러 번(?) 할 수도 있겠지만 대학 졸업은 일생에 한 번뿐'이라는 명분 하에, 한껏 치장하고 마음껏 즐기는 분위기가 식장을 압도하고 있다.

덕분에 경건해야 할 졸업식장은 사진을 찍기 위한 배경으로 전락했고, 졸업가운과 모자는 졸업을 증명하는 도구로 화했으며, 졸업장은 취업할 때 필수품인 자격증 정도로 자리매김 되고 만 것이 우리네 솔직한 현주소인 듯 하다.

미국 유학 시절 동료 졸업식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인상적인 장면을 만난 경험이 있다. 그곳에선 총장님 주재 하에 전체 졸업생이 참석하는 식을 거행한 이후에 다시 단과대학별로 졸업식을 진행하는 순서가 이어졌는데, 그 자리에선 학장님이 졸업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졸업장을 수여하는 의식이 마련되어 있었다.

졸업장 수여를 진행해가던 중 한 학생이 단상으로 올라오자 학장님은 잠시 옆으로 비껴 서고 대신 교수 한 분이 졸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 섰다.

교수가 학생에게 졸업장을 건네는 순간 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뜨거운 포옹을 나눈 후 단상을 내려오는 두 사람을 향해 어떤 관계냐 물었더니 그 두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자유분방함의 대표주자라 할 미국 대학생들이 지루하고도 기나긴 졸업 예식에 진지하게 참여하는 모습에 더하여, 가족이 가장 빠른 속도로 퇴색되어간다는 미국에서 오히려 아버지가 아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음을 목격하고 보니, 잔잔한 감동이 일기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 '내가 뭘 가르쳤던가' 아쉬움만

대학 졸업식장 풍경의 변화 속에도 우리네 각박한 세태가 에누리 없이 녹아 있음을 그 누가 부인하랴만, 명실 공히 고등교육 과정을 마치고 의미 있는 학위를 수여 받는 의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 더 더욱 부모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나 스승을 향한 작은 배려의 그림자조차 실종되어 버린 현장에 서 있자니, '우리들 부모 세대가 물질적 풍요로움에 밀려 자식 세대에게 정말 소중한 가치들을 가르치지 못했구나' 후회가 밀려오는 요즈음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저작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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