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무명용사도 인정 받을 수 있길"
“뒤늦게나마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게 돼 기쁩니다.”
한국 전쟁 당시 무명용사로 적진에 침투해 첩보작전을 수행하던 70대 후반 ‘켈로(KLO)부대원’이 55년만에 국가유공자로 인정 받았다. 작전 중 큰 부상을 입었지만 관련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다 4전5기의 필사의 노력 끝에 한을 풀었다.
주인공은 서울 강서구 화곡1동에 살고 있는 켈로부대원 임덕준(79)옹. “3차례나 (북한에) 침투해 큰 전과를 세웠고 부상을 있었는데 병상기록이 없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어요. 전쟁 중에 병상기록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겠어요.”
임 옹은 황해도 송화 출신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950년 12월 해병대 모병 7기로 입대,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켈로부대에 편입됐다. 이 부대는 1949년 미국 극동군사령부가 첩보활동을 위해 설치한 ‘주한연락처’(Korea Liaison Office)라는 의미의 대북 첩보부대로 북한 출신들로 구성돼 북한 관련 첩보 수집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1953년 2월 북한군 주둔지역인 송화 지역에 침투, 정보를 수집하고 귀대하다 지뢰 파편이 우측 얼굴을 관통하는 큰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 동료의 등에 업혀 부대로 귀환, 간이 의무대에서 이웃마을에 살았던 이모 간호사에게 응급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 인근 해역에 정박중이던 유엔군 병원선으로 옮겨진 뒤 치료를 받아 1954년 제대했고, 1961년에야 겨우 군번을 받았다.
그러나 임 옹은 국가유공자로 인정 받지 못했다. 1995년 ‘참전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1999년과 2003년 2차례에 걸쳐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전쟁 중 부상했다는 것을 입증할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4년 제기한 행정심판도 기각 당했다. 결국 임 옹은 지난해 1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다행히 고충위는 6개월 조사를 통해 간호사와 병원선으로 후송한 소대장의 증언 등을 확보, 국가보훈처에 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보훈처는 지난해 11월 임 옹의 유공자 신청을 재접수한 뒤 12월 유공자로 의결, 11일 국가유공자 증서를 발부했다.
제대 후 30년간 부대활동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강요 받았다는 임 옹은 “부상 후유증에다 아내까지 파킨슨병에 걸려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무명용사로 남아 있는 나머지 켈로부대원들도 국가유공자로 인정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성호 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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