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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열정

입력
2008.02.2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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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르 마라이 / 솔"말이 아니라, 전 생애로 답할 수밖에 없는 운명"

1989년 2월 21일(22일로 기록된 자료도 있다) 헝가리 작가 산도르 마라이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외로움 속에 권총자살했다. 89세, 그가 공산화됐던 조국 헝가리를 떠나 망명생활로 떠돈 지 41년 만이었다.

독일어가 가문의 언어였고 프랑스에 10여년간 머무르며 시인들의 작품을 헝가리어로 번역할 정도였지만 “작가는 모국어 속에서만 살고 일할 수 있다”며 헝가리어로 글을 썼던 그는 헝가리에서조차 오랫동안 판금돼 잊혀졌던 작가였다.

그가 단숨에 토마스 만, 카프카와 같은 반열의 20세기의 문호로 칭송되며 ‘재발견’된 것은 죽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1990년대 후반, 이탈리아와 독일 그리고 영어권에서 작품이 번역출판되면서다.

한국에 산도르 마라이의 작품이 알려진 것은 2001년이다. 그때 그의 소설 <열정> 과 <유언> 을 읽고 “산도를 마라이를 만나는 것은 충격이다. 이런 작가가 세계문학에서 70여년 가까이 철저히 망각된 채 파묻혀 있었다는 것이 안타깝고, 그래도 뒤늦게 21세기에나마 그의 소설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라고 기사를 썼었다. 흥분된 어조다.

하지만 그의 시적인 문장은 지금 다시 펼쳐 읽어도 마치 오스트리아ㆍ헝가리제국의 낡은 고성에서 장중한 교향곡의 선율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랑과 우정 그리고 배신과 기다림의 인간사에 대해, 우리 내부에 가두어놓았던 열정이 고성의 장작불처럼 타오르게 만드는 것이다.

41년이라는 햇수는 산도르 마라이에게 자신의 문학적 주제인 운명처럼 연결돼 있었을까. 그는 41년의 망명생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열정> 은 75세의 노장군 헨릭이 쌍둥이처럼 지내던 친구 콘라드와 아내에게 배반당한 뒤 오로지 침묵과 고독 속에서 칩거하며 기다리다, 41년 만에 찾아온 콘라드와 나누는 긴 하룻밤의 대화다.

‘결코 이를 수 없는 삶의 다른 기슭 사람’들이었던 세 사람, 산도르 마라이가 그들을 통해 들려주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전 생애로 대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이야기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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