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구에 사는 A씨는 3개월마다 서울로 올라온다. 대구에도 종합병원이 있지만 서울 S병원이 자신의 지병(간경변)을 더 잘 치료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3분에 불과한 짧은 진료시간에도 불구하고 간 분야에서 명의로 소문난 Y교수를 만나기 위해 10시간을 차에서 보내야 하지만, 하루라도 더 건강하고 오래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게 A씨의 생각이다.
#2. 대기업 간부인 B씨는 올해 설 연휴 첫날 부친과 함께 응급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다. 부친이 입원했던 서울의 대형 A병원이 ‘1, 2일을 더 버티기 힘들다’고 통보하자 연휴로 문상객이 없을 서울보다는 고향에서 임종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친은 도착 직후 숨졌다. 부친이 돌아가신 것은 슬펐지만, B씨는 서울에서 마지막까지 치료를 받도록 해드린 데 대해서는 자식된 도리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서울과 지방 대형 병원의 격차가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며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대규모 시설투자를 통해 일거에 명성을 얻은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재벌계열 종합병원이 그 ‘이름 값’을 바탕으로 환자와 우수 의료진을 유치해 지방 병원과의 격차가 확대되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 의료계를 중심으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19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재벌계열 병원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거의 대등했던 서울과 지방 종합병원의 경쟁력 격차가 최근 2~3배 이상으로 확대됐다. 병원 경쟁력의 양대 요소인 시설(병실)과 의료진(전문의) 수준에서 지방이 서울 종합병원을 따라잡기는커녕 훨씬 더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
흔히 서울의 ‘빅4’ 병원으로 불리는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의 2005년말 현재 병상수는 평균 1,608개인 반면, 지방의 의료 거점인 각 지역 국립대병원은 평균 660개에 불과하다. 또 지방 국립대 병원의 평균 전문의 숫자는 111.6명에 불과한 반면, ‘빅4 병원’의 전문의는 평균 398명으로 국립대의 3.56배에 달한다.
경쟁력 격차는 환자와 우수 의료인력의 쏠림 현상으로 이어져 매년 서울ㆍ지방의 경쟁력 격차를 확대시키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5년까지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 환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거주 암환자의 24.3%가 해당 지역에 치료시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울 소재 종합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특히 제주 지역 암환자의 경우 서울에서 치료를 받으면 체재비 등까지 포함해 제주에서 치료를 받는 것보다 비용이 30~40%나 더 드는데도 암환자의 44.2%가 서울로 올라와 치료를 받았다.
우수 의료인력 역시 서울ㆍ수도권으로 몰려 들어, 지난해의 경우 상당수 지방 종합병원은 인턴 지망생이 모집정원에도 못미치는 등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 의료계에서는 의료진의 질적 수준 제고를 위한 시설ㆍ장비 지원 의료 인력 확충을 위한 겸직교수 정원 확대 집중치료실, 수술실, 응급센터 등 핵심 진료부서 인프라 개선 지원 등의 지원 대책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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