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 / 이후'소비' 되는 전쟁의 이미지"연민만으로는 안 된다"
“사라예보에서 보냈던 오랜 시간을 떠올려 봤습니다… 하루하루가 공포의 나날이고 전쟁이 진부한 일상이던 곳에서 거주하며, 이런 경험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 이런 경험을 단지 이미지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쟁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수전 손택(1933~2004)은 2003년 <타인의 고통> 한국어판에 쓴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코소보의 독립선언으로 발칸에 다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 이 책이 떠오른다. 타인의>
<타인의 고통> 은 1992~95년의 보스니아 내전과 1998~99년의 코소보 사태를 현장 혹은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전쟁의 이미지’, 그리고 전쟁 그 자체에 대해 성찰한 손택의 글이다. 전쟁의 참사를 찍은 사진들을 ‘하룻밤의 유흥거리’처럼 소비하는 현대사회, 저 멀리 떨어진 분쟁지역에서 살아가는 타인의 고통은 어떤 의미인가? 타인의>
조르주 바타이유가 평생 책상 속에 두고 봤다는, 1905년 중국에서 능지(凌遲)당하는 청년의 사진부터,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 군인의 만행을 찍은 사진까지, 하나하나의 전쟁 이미지에 통찰을 가하며 손택은 “우리는 그런 고통에 개입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가?” 묻는다.
“그들이 우리와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사진을 보기만 하는)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라고 절절한 문장으로 환기시킨다.
31세 때 “예술의 본질은 강간이 아니라 유혹”이라며 예술에 고정된 의미를 부여하려는 지식인들의 해석 행위를 비판한 에세이 <해석에 반대한다> 를 발표, ‘새로운 감수성의 여사제’로 등장한 손택은 이후 예술평론가, 소설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며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무엇보다 그는 9ㆍ11 이후 대테러전쟁을 실체가 없는 ‘은유적 전쟁’이라 규정하고 맹비판하는 등 내내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다. 해석에>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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