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인이 서울시장 재직시 서울시와 관련 기관 등에서 이 당선인과 인연을 맺은 서울시 인맥이 국정 주도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른바 ‘서울시 사단’이다.
‘서울시 사단’은 최근 청와대 대통령실과 초대 내각에 대거 진출하면서 이 당선인의 ‘국가 선진화’ 드라이브를 이끌 중추세력을 형성했다. 18일 발표된 조각(組閣)에선 15명의 장관 후보자 중 강만수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한 5명이 이름을 올렸다.
청와대에는 이 당선인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연구원(GSI)을 이끌며 서울시장 선거 때부터 정치자문 역할을 했던 유우익 대통령실장과 곽승준 국정기획수석이 포진했다.
이 당선인의 시장 시절 법률고문을 했던 이종찬 전 서울고검장은 민정수석으로, 정무보좌역 출신으로 이번 내각 인선을 주도했던 박영준씨는 인사비서관으로, 김백준 서울메트로 감사는 총무비서관으로 입성했다.
정부쪽에는 ‘서울시 사단’이 경제ㆍ행정ㆍ문화 등 주요 분처 수장으로 임명됐다. 강만수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출신이고, 원세훈 행정자치부장관 후보자는 행정부시장을 역임했다.
유인촌 문화관광부장관 후보자와 이춘호 국무위원 후보자는 이 당선인이 시장 시절 만든 서울문화재단의 대표이사와 이사를 각각 지냈다.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와 금융위원장 임명이 유력한 백용호 이화여대교수 역시 각각 서울시 여성위원회 위원장과 서울시정개발 연구원장을 지냈다.
18대 총선을 거치면 한나라당에서도 이들 그룹이 주류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무부시장 출신인 정두언 의원을 정점으로 이춘식(정무부시장) ㆍ백성운(전국시도지사협의회 사무총장) ㆍ김흥권(행정부시장) ㆍ정태근 (정무부시장) ㆍ강승규(서울시 대변인)ㆍ조해진(정무보좌관)ㆍ이봉화(여성가족 정책관) ㆍ김병일(대변인) 등이 대거 출사표를 던졌다. 이 당선인의 핵심 측근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이들의 정치적 후원자이다.
‘서울시 사단’은 문민정부 때의 상도동계와 국민의 정부 시절 동교동계, 참여정부의 386 그룹 등 역대 정부의 중심 세력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전 세력은 지역적 연고나 이념ㆍ노선, 정치적 의리 등으로 뭉친 정치결사체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서울시 사단’의 정체성은 한마디로 말하면 ‘일’이다. 이 당선인과 서울의 시정(市政)을 이끌거나 대선공약을 준비하면서 맺어진 인연이다. 때문에 구성원들도 전문 정치인이 아니라 관료와 학자, 전문가 등 이 많다.
정치학자들은 ‘서울시 사단’의 등장을 역대 정권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 출신 인사가 대통령이 되면서 그와 정치ㆍ행정 경험을 함께 했던 지방정부 인사들이 권력의 핵인 중앙 정부와 청와대로 상승 이동한 것은 역대 정권에서 전례가 없었다.
이런 현상은 주지사가 빈번하게 대통령에 당선되는 미국에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칸소 주지사 출신인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지방 정부 인사들과 지역 측근, 정치컨설턴트 등이 백악관에 입성, ‘아칸소 사단’을 형성한 것이 가장 최근의 예다. 지미 카터의 ‘조지아 사단’, 로널드 레이건의 ‘캘리포니아 사단’도 마찬가지다.
‘서울시 사단’의 부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교수(한국 정치학회장)는 “지방자치단체장 시절 함께 일하면서 능력을 검증한 사람들과 호흡하며 국정을 이끄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한국정치의 새로운 패턴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는 “이 당선인 인맥은 실용적 성격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국정 주도세력이 가신그룹에서 테크노크라트 네트웍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무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클린턴의 아칸소사단도 기성 정치 집단인 워싱턴 세력과 마찰이 많았다”며 “행정적 팀워크는 좋을 수 있지만 정무적 측면에서 갈등해소 역할을 잘 해 낼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임 교수도 “서울시와 국가 전체는 차원이 다르고 생각해야 할 관점도 다르다”며 “이들의 행동방식이 정치 현안에 대해 정책적 관점에서만 접근하거나 정치적 타협이나 양보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희기자 goodnews@hk.co.kr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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