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한 소년 소녀가 만나 알콩달콩 연애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성장하고, 결국 결혼해 골인해 아이를 낳는다. 1차 방정식 같은 사랑, 혹은 인생의 프로세스다. 그런데, ‘거꾸로’ 해보면 어떨까? 일단 애부터 낳는 거다. 그리고 나서 알콩달콩 소년소녀 풋풋한….
말도 안 된다고 생각 말자. <주노> 를 보면 세상엔 그런 삶도 가능하단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미혼모’라는 낱말이 주는 어감이 늘 그렇듯, 영화가 칙칙하지는 않다. 시종 밝고 유쾌한, 깜찍한 매력이 가득한 커다란 막대사탕 같다. 주노>
열여섯 고등학생 주노(앨렌 페이지), 어리숙하지만 한없이 착해 보이는 남자친구와 섹스를 하고 덜컥 애를 갖는다. 낙태를 잠깐 고민하다 부모 앞에 서서 당당히 선언한다. 아이를 낳아, 아이가 정말 필요한 가정에 줄 거라고. 그리곤 억장 무너지는 부모를 되레 위로한다. “걱정 말아요. 30주 뒤면 원래 나로 돌아갈 테니까.”
주노는 남산 만한 배로도 끊임없이 찰방거리고, 아기의 양부모가 될 부부가 불화를 겪을 때 그것을 극복할 희망을 전해준다. 이 영화는 미혼모라는 소재를 코믹하게 엮어 웃음을 유발하는 그런 ‘싸구려’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살아가는 에너지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를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물론, 열여섯 살짜리가 그것을 꿰뚫는 통찰을 가진 것은 아니다. 주노는 다만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몫의 책임을 피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사랑스럽다. 아이를 입양 보내고 나서 남자친구와 나란히 기타를 치는 마지막 장면은, 연둣빛 가득한 봄햇살처럼 싱그럽다.
250만 달러의 적은 돈을 들여 찍어, 두 달 만에 40배가 넘는 돈을 벌어들인 똘똘한 영화. 스트리퍼 출신 디아블로 코디가 각본을, 제이슨 라이트먼이 연출을 맡았다. 21일 개봉. 12세 관람가.
유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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