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를 먹고 사는 스타에게 대중의 기억력이 갖는 가치는 생각보다 높다. 인기라는 게 워낙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잠시라도 대중의 기억 속에서 스타의 존재가 잊힌다면 그만큼 스타의 수명은 짧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예인만큼 기억의 유효기간에 관심을 가지고 민감한 사람들도 없다고 한다.
1991년 <이별 아닌 이별> 을 불러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 이범학(42)의 출현은 극적이었다. 앨범을 내놓은 지 한 달 만에 가요 순위 프로그램 정상에 올랐고, 세상은 신인에 불과했던 그를 90년대를 연 스타로 칭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누렸던 절정의 인기는 몇 년을 넘기지 못한 채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이범학은 무려 16년 동안이나 연예계의 경계 밖에 머물렀다. 스타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오랜 부재. 대중의 장기 기억마저 그를 잊은 듯한 지금, 이범학이 16년 만의 새 앨범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이별>
“제가 그동안 도대체 뭘 하고 살았을까. 궁금해 하실 것 같은 데….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한 번도 음악 만드는 일에서 손을 뗀 적이 없어요. 16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지 않을까. 혹시, 연예계에 신물을 느끼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다른 인생을 찾아 떠나지 않았을까. 궁금한 물음에 돌아온 답은 의외로 담담했다.
“이것 말고 다른 일은 생각해본 게 없어요. 흔하게 하는 부업에도 눈길을 준 적이 없죠. 제가 워낙 낙천적이고 고민하지 않는 성격이라, 인기가 내려갔을 때도 흔히 말하는 공허감에 빠지진 않았어요. 괜히 가족과 주변 분들이 저에게 말 걸 때마다 조심하느라 힘들었어요. 그래도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저를 보고 ‘영화배우 정준호 닮았단 소리 안 들으세요’ 라고 말할 땐 서운했죠. 하하. ”
이범학 1집 <이별 아닌 이별> 은 사실 그가 속했던 그룹 ‘이색지대’의 앨범이었다. 발매 직전 팀이 깨지면서 솔로 앨범으로 변신했고, 그러다 보니 그는 제대로 된 ‘계약’ 도 못한 채 연예계 생활을 조금은 유별나게 시작했다. “92년에 2집 <마음의 거리> 를 내면서 겨우 2년 계약을 했고, 이후 94년에 완전히 ‘프리’가 됐죠. 이래저래 계약이 끝나면서 안 좋은 일도 있었고, 계약기간 동안 노래도 내놓지 못해 너무 아쉬운 세월이었어요.” 그는 이럴 바에 아예 곡을 짓고, 프로듀서를 직접 해 음반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95년부터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돈을 겨우 구해서 앨범을 거의 녹음했는데, 들어보니 이게 아니다 싶더군요. 편곡을 새롭게 해도 만족할 수가 없었어요. 제작비 떨어지면 미사리에 가서 공연해 충당하고, 몇 년 전엔 중국 드라마 음악을 만들기도 했죠. 1년에 500만원도 못 벌던 시절이 있었지만 음악은 절대 포기 안 했습니다.” 마음의> 이별>
그가 가을 전 발매를 목표로 녹음하고 있는 이범학 정규 3집 앨범의 형식에 대해선 아직 고민 중이라고 말한다. “16년 만에 등장하면서 평범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마지막 기회란 각오도 단단합니다. 일단 타이틀 곡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장르를 리메이크 한 작품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다른 곡들은 저를 기억하는 팬들이 만족할 만한 발라드로 구성하고요. ‘이범학’이란 이름이 아닌 다른 프로젝트 팀으로 엮어서 앨범을 낼지도 고민 중입니다.”
이범학은 앨범 발매와 맞춰 오랜 희망사항이던 연기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무대를 떠난 동안 2년 정도 대학로에서 틈틈이 연기공부를 했어요. 제 꿈이었던 라디오 디제이, 가수, 연기자 중 마지막 남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죠. 촬영 중인 한 드라마에서 단역으로 출연해요. 가수가 아닌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처음이죠. 다른 영화나 드라마 작품 섭외도 추진 중입니다. 연기자 이범학을 보실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새 앨범과 연기 도전 외에 그는 또 한가지의 과제를 앞두고 있다. 기네스 신기록 도전이란다. “내달 히말라야 6,000m 높이에서 콘서트를 가질 예정입니다. ‘사랑의 밥차’ 라고 제가 계속해온 봉사활동의 일환인데, 장애인분들과 함께 산에 올라 그곳에서 가수 고한우, 송봉주 등과 작은 음악회를 열게 됩니다. 최고도 콘서트 기존 기록이 해발 5,800m라고 하니까 성공하면 신기록 달성인 셈이죠.”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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