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동통신 서비스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1988년 가입자 700여명으로 출발한 이동통신 서비스가 20년 만에 가입자가 4,000만명을 넘어서는 국민 서비스로 발전했다. 그만큼 산업과 이용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이동통신의 발자취는 국내 정보기술(IT) 산업의 발전상을 대변한다.
■ 카폰을 넘어 휴대폰으로
88년은 서울올림픽이 열린 해이기도 하지만 ‘휴대폰’으로 통하는 개인용 이동통신 서비스가 처음 등장한 해다. 당시까지 자동차에 설치한 차량전화(카폰)기 이동통신의 전부였지만 그해 7월 1일부터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이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하며 휴대폰이 보급됐다.
당시 한국이동통신이 수도권과 부산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이동통신의 월 기본료는 2만7,000원이며 통화료는 10초당 25원이었다.
20년이 지난 요즘 일반요금제 기본료가 1만3,000원, 통화료가 평균 10초당 18원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고가였다. 여기에 가입비에 해당하는 설치비 65만원을 따로 받았기 때문에 경제적 여유가 있지 않으면 휴대폰을 사용하기 힘들었다.
당시 요금 외에도 문제점이 많았다. 휴대폰 가격이 200만원을 넘어가는 등 비쌌고 출력이 약해 통화가능 지역이 좁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첫 해에는 가입자가 많지 않아 784명이 전부였다. 오히려 카폰 이용자가 1만9,569대로 더 많았다.
휴대폰이 전국 서비스로 확대된 것은 89년부터였다. 한국이동통신은 한 해 동안 전국적으로 2만3,000회선을 늘려 전국 35개 도시와 경부, 호남, 중부, 구마 등 4개 주요 고속도로에서 통화를 할 수 있게 됐다.
■ 휴대폰 산업의 발전
국내 이동통신의 등장은 휴대폰 산업의 발전을 이끌면서 한국이 IT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1988년 당시 국내 휴대폰 시장은 한진전자, 유니텍시스템 등이 영국 테크노폰, 미국 모토로라사 제품을 수입, 판매하는 정도였다. 국내 최초의 휴대폰은 모토로라의 ‘다이나텍8000’ 이었다. 당시 판매가격은 240만원.
이동통신 가입자가 늘어나면서 삼성전자, 현대전자, 금성통신(현 LG전자) 등이 외국업체들과 제휴해 본격적으로 휴대폰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미국 TTI사와 기술제휴를 통해 서울올림픽 행사에 휴대폰 50대를 납품하면서 본격적인 양산체제를 갖췄다. 휴대폰 양산은 결국 가격 인하를 가져와 휴대폰 보급을 촉진시켰다.
그 결과 91년 12월에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97년 KTF, LG텔레콤 등 본격적인 개인휴대통신(PCS)이 등장하면서 이동통신 시장은 경쟁체제로 접어들었고 가입자도 급격히 증가했다.
■ DMB에서 HSDPA까지
이제 이동통신은 더 이상 단순 통화수단이 아니다. 98년 12월 무선데이터 서비스가 등장하며 휴대폰으로 각종 자료를 전송 받을 수 있게 됐다. 이후 2004년 3월에 SK텔레콤에서 세계 최초로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용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면서 휴대폰으로 위성방송을 볼 수 있는 위성DMB 시대가 열렸다.
뿐만 아니라 음성을 뛰어넘어 영상통화 시대가 본격 개막됐다. 지난해 3월 KTF에서 얼굴을 보며 통화할 수 있는 고속하향패킷접속(HSDPA) 방식의 ‘쇼’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국내에도 영상통화 서비스가 본격화됐다. 현재 영상통화 가입자는 올해 1월말 기준으로 SK텔레콤 296만명, KTF는 367만명 등 총 663만명이다.
이동통신의 발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무선 인터넷을 더 빠른 속도로 이용할 수 있는 고속상향패킷접속(HSUPA)와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로 진화할 예정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HSUPA는 자료를 보내는 속도가 5.76Mbps로 HSDPA의 384Kbps보다 빠르며, LTE는 자료를 받는 속도가 초고속인터넷 수준인 100Mbps에 이른다”며 “HSUPA는 연내 전국 주요 도시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LTE의 서비스 시기는 미정”이라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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