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체제가 작동하는 동력을 정치 이데올로기, 경제ㆍ사회시스템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에서 찾으려는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1990년대부터 정치ㆍ경제사가 아니라 개인의 일상생활을 분석해 사회변동의 원인을 찾으려는 연구방법론이 각광을 받았다. 남한사회에 대해서는 ‘대중독재론’ (억압과 강제가 아니라 대중이 일상에서 광범위하게 독재에 동의했다는 이론) 처럼 이론적 결실을 맺기도 했다.
90년대 중반부터는 급증한 탈북자들과 냉전 이데올로기 해체 등으로 이 방법론을 북한사회에도 적용해보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해 8월 북한 일상생활 연구를 목표로 출범한 동국대 북한일상생활연구센터가 18일 ‘북한 일상생활 연구의 패러다임 모색’을 주제로 연 토론회는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홍민 동국대 북한학과 연구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일상연구’를 ‘아래로부터의 역사연구’로 정의하며 “아래층에서 이루어진 일들이 때로 지도자, 중앙관료의 힘보다 사회의 모습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왔음을 주시해야 한다”며 “경제난 이후 북한사회에서 진행된 변화를 해석하기에는 권력과 공식문헌 중심적인 기존연구는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석단의 서열변경 현상을 분석하기보다는 탈북자 면접을 통해 ‘주민들의 소유관념은 어떻게 변모했는가?’ ‘생활총화 등 사상교육을 통해 주민들을 통제하던 관리들이 언제부터 생필품 매매 허용여부로 주민을 통제하게 됐는가’ 등을 파악한다면 최근 10년 간 진행된 북한사회의 총체적 변화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와 관련된 연구주제로 부와 소유관념의 변화, 공동체성과 개인정체성의 변화, 장터문화의 형성, 빈부 격차의 확대와 사회계층화, 가족해체 및 가족구조의 변화, 세대 간의 가치변화, 도시기능과 주거문화의 변화 등을 제시했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여전히 주체사상이 북한사회를 지탱하는가” 라는 질문 역시 일상의 분석을 통해 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아리랑 축제 준비과정에 대한 북한 대학교수 출신 탈북자의 증언을 사례로 든다.
고위급 교원이었던 이 탈북자는 집단체조 때가 되면 자녀가 집단체조 연습보다 참가자들의 옷 지키는 일에 배치시켜 달라는 학부모들의 청탁을 해마다 받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주체사상이라는 일종의 정치종교에 대항, 북한 대중들이 살아남기 위해 일상적으로 저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국경이 개방되자마자 허무하게 무너진 동독처럼 북한사회에서도 이념 주입교육에 결석하거나 사소한 일탈행위는 처벌하지 않는 등 주체사상에 대한 일상적인 저항행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욱 동국대 북한학과 연구교수는 90년대 이후 북한의 증여시스템(배급제, 선물 등) 붕괴 이후 진행되고 있는 주민들의 지배권력에 대한 일상적 저항에 주목한다. 그는 이를 ‘거리두기’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노동자들이 공모를 통해 집단적으로 출근을 거부하고 시장에서의 상행위에 참가해 사적이익을 도모하거나, 작업장에서 이뤄지는 고의적인 태만, 지각, 절도행위 등이 사례다. 그는 “수령-당-대중으로 이뤄졌던 기존의 체제대신 시장을 매개로 새롭게 구성되는 북한사회의 관계망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변동이 가져올 다양한 파급에 대비해야 할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북한주민의 일상생활을 생생하게 복원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며 “단순히 아래층의 일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변화들이 어떻게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해 북한체제 변화에 연결되는 것인지에 대한 상호작용 모델을 만드는 것이 향후 과제”라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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