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날 비오면 안되는데…우리는 연습할 때도 비오면 큰일나요.” ‘알브레히트’ 이원국(41)의 너스레에 ‘지젤’ 임혜경(37)이 눈을 흘긴다. 다음달 20~23일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지젤> 에서 호흡을 맞추는 두 사람이다. 지젤>
‘발레리노의 교과서’로 불리는 이원국은 한번 공연할 때마다 최고령 기록을 늘려가고 있는 현역 최고령 발레리노.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임혜경은 발레단 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발레리나이자 유일한 엄마다.
2005년 <돈키호테> 에서 처음 파트너를 이룬 두 사람은 이후 <지젤>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등으로 매년 무대에서 만났다. <지젤> 은 사랑스러운 시골 소녀 지젤이 알브레히트에게 배신당해 죽음에 이르지만, 귀신이 되어서도 사랑을 지킨다는 줄거리의 낭만 발레. 지젤> 백조의> 호두까기> 지젤> 돈키호테>
발레단 연습실을 찾아갔을 때 두 사람은 지젤의 무덤을 찾아온 알브레히트가 지젤의 영혼과 재회하는 2막의 첫 장면을 연습하고 있었다. 이원국이 들어올린 임혜경은 마치 무게가 없는 깃털처럼 우아하고 신비로웠다.
임혜경은 처음 이원국과 파트너가 됐을 때 “미안하다”고 했다. 174㎝의 장신인 임혜경은 발 끝으로 서면 190㎝가 되기 때문에 늘 파트너에게 신경을 써야 한다. 무게도 키작은 무용수보다 더 나갈 수 밖에 없다. “<지젤> 은 특히 남자 무용수가 온전히 이동시켜줘야 하는 작품이거든요. 하지만 오빠는 ‘넌 완벽하다’며 용기를 줬어요. 단점을 커버해 줄 뿐 아니라 자신감이 생길 만큼 안정감을 주죠. 오빠는 손이 세 개인 것 같아요.” 지젤>
이원국은 “우리는 서로를 빛나게 해주는 파트너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남들은 키 큰 파트너가 부담스럽다고 하는데 전 잡을 데도 많고 무대를 꽉 채울 수 있어 더 좋아요. 특히 혜경이는 볼 때마다 발전하는 것 같아요. 인생을 알고 추는 것과 기교만으로 추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걸 보여줍니다. 지난번보다 무게도 가벼워진 것 같은데요.”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를 거쳐 이원국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이원국은 주역만 20년을 했다. “어떤 발레리나들과 호흡을 맞춰봤냐”는 질문에 “해보지 않은 사람을 꼽는 게 빠를 것”이라고 답했다.
<지젤> 만 해도 1993년 문훈숙(현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을 시작으로 15년간 배주윤 김지영 김주원 임혜경 윤혜진 등 수많은 발레리나들과 함께 췄다. 시간은 흘렀지만 기량은 녹슬지 않았음을 지난해 <스파르타쿠스> 를 통해 입증했다. 스파르타쿠스> 지젤>
임혜경은 “신입 단원 시절, 당시 수석무용수 이원국이 자신을 괴롭혀가며 혹독한 연습을 하는 걸 봤다”면서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이원국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몸의 변화에 민감한 여자 무용수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심각한 문제다. 임혜경은 2005년 출산 5개월 만에 <라 바야데르> 의 주역으로 무대에 섰다. 출산 당일에도 발레 클래스를 했고, 아이를 낳고 한 달 만에 연습실에 복귀했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면서 성균관대 겸임 교수로 강단에도 선다. 후배들의 상담 신청을 자주 받는 그는 “춤과 삶은 별개가 아니다. 아이를 낳고도 얼마든지 춤출 수 있다”고 조언한다. 라>
“한국은 아직 발레 역사가 짧아 샘플이 별로 없죠.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발레리나들도 있고요. 제가 좋은 표본이 됐으면 합니다.” 임혜경은 “근육 움직임이 20대만큼 유연하지는 않겠지만, 경험이 많기 때문에 호흡 조절을 통해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물론 꾸준한 연습은 필수”라고 덧붙였다.
둘은 똑같이 여섯 살짜리 딸을 뒀다. 이원국의 딸은 벌써 아빠가 만든 작품에 출연했고, 임혜경의 딸도 발레를 배우고 싶어한다. “10년만 더 하면 딸과 파트너로 춤을 출 수도 있겠다”는 임혜경의 말에 이원국도 “정말 그럴 수 있을까”라며 웃었다. 발레단에서 임혜경의 호칭은 ‘선생님’이다.
이원국은 이번 공연에서 알브레히트 역을 맡은 무용수 가운데 가장 젊은 이현준보다 18년이 위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과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등 세계적 발레단의 정년은 40세. 마고 폰테인과 마야 플리세츠카야 등은 환갑이 넘도록 토슈즈를 신었지만 무용수들이 장기간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뒷받침이 전무한 국내에서는 더욱 강한 신념과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이원국과 임혜경의 <지젤> 이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지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