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결국 백인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패배할 겁니다.” 미 워싱턴 D.C.의 한 정치학자가 미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전의 최대 승부처였던 2월 5일 ‘슈퍼 화요일’ 대회전이 치러지기 직전에 내놓았던 예상이다.
■ 인종대결 투표 예상 빗나가
그 자신이 백인 남성인 이 학자는 “백인들은 누가 물어보면 흑인 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투표장에서는 다른 행태를 보일 것”이라며 백인들의 ‘위선’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끄러운 일이나 그것이 아직도 갈 길이 먼 미국의 인종적 현실”임을 고백하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내보였다.
미 민주당 경선이 인종 대결적 투표 양상으로 흐를 것이라는 생각은 ‘슈퍼 화요일’ 이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특히 오바마 의원이 흑인 유권자들의 표 가운데 80~90% 이상을 싹쓸이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에 맞선 백인들의 결집도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주장은 더욱 그럴 듯하게 들렸다.
삶의 여러 현장에서 이런 저런 인종 차별적 상황을 직접 겪었을 한인 동포를 포함한 아시안계 이민자들도 이 시각에서 벗어나기는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미국의 양식 있는 백인들이 수치스럽게 여겨야 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까지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민주당 경선이 슈퍼 화요일을 넘어 중반을 거치고 종반전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오바마 의원에 대한 백인들의 지지는 오히려 그 저변이 넓어지고 보다 단단해지고 있다.
오바마 의원이 ‘슈퍼 화요일’ 이후 파죽의 8연승을 거두며 힐러리 의원을 압도한 것은 백인들의 지지세 확산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특히 오바마 의원이 백인 남성들의 지지 확보에서 힐러리 의원을 추월해 버린 현상은 직접 접하면서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극적이다. 힐러리 의원은 백인 여성들의 지지에서는 아직도 상당한 우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백인 남성들에 의한 ‘상쇄 효과’로 인해 전체 백인 지지에서 오바마 의원을 간신히 앞서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미국은 여전한 ‘인종 차별의 나라’라는 현실이 갑자기 사라지고 그 오명이 순식간에 지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 미국의 힘 키우는 인종 통합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실현돼가는 인종 화해, 인종 통합의 메시지와 거기에 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백인들의 선택은 미국을 다시 보게끔 만들고 있다. 미 언론은 이를 두고 “오바마 의원은 지든, 이기든 이미 미국 사회를 변화시켰다”고 치켜세우고 있으나 실은 오바마 의원 스스로는 이 같은 변화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다. 오바마 의원은 백인들의 눈을 의식해 흑인 교회를 공개적으로 방문하는 일을 삼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흑인들이 전체 유권자의 절반인 사우스 캐롤라이나 경선을 앞두고는 외모에서 흑백 혼혈인 자신보다 훨씬 더 ‘흑인스러운’ 부인 미셸 오바마를 보내 주요 대학에서 연설을 하도록 했다.
백인들이 오바마 의원을 지지하고 있는 데에는 여러 가지 정치ㆍ사회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오바마 의원의 자질보다는 힐러리 의원과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이 백인들을 돌려 세우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감안한다 해도 지금 구현되고 있는 인종 평등의 가치가 대선을 계기로 미국의 진정한 힘으로 자리잡는다면 미국은 더욱 ‘무서운’ 나라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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