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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손잡고… KTX 타고… 휴일 숭례문 추모 발길 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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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손잡고… KTX 타고… 휴일 숭례문 추모 발길 밀물

입력
2008.02.18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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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이여, 우리 못난 후손들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오.”

17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4가 29번지 일대는 추도식을 앞둔 거대한 장례식장으로 변했다. ‘대한민국 국보 1호에 몹쓸 짓을 했다’는 자책 때문인지 휴일을 맞아 숭례문 화재 현장을 찾은 시민들의 눈가에는 물기가 어른거렸다.

오전 11시께 마치 상여 행렬처럼 상복을 입고 머리에 삼베 두건을 둘러 쓴 이들이 징과 북을 치며 나타나자 시민들의 비통한 마음은 극에 달했다. 김덕수 한국종합예술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비롯한 ‘사물놀이패’ 원년 멤버 4명이 숭례문의 혼을 위로하고 문화재 보호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진혼 비나리’를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진도 씻김굿’이 숭례문 앞 광장에서 펼쳐지자 칠십을 넘긴 듯한 한 할아버지는 연신 뿔테안경 너머로 눈물을 훔쳤다. 김덕수 씨는 “원래 비나리는 복을 비는 것인데, 이번에는 진혼의 의미를 담은 비나리를 선보였다”며 “현장에 와보니 마음이 너무 비통하다”고 말했다.

주말과 휴일 숭례문 화재 현장은 전국에서 몰려든 시민들로 크게 붐볐다. 지방에서 KTX를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 숭례문까지 걸어 온 이들이 많았다. 시민들은 저마다 “언론을 통해 국보 1호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아 서울로 오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 어린이들이 외출하기엔 추운 날씨였지만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현장을 찾은 부모들도 많았다. “숭례문의 참담한 모습을 보여주고 그 교훈을 꼭 되새기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부산에서 승용차 편으로 딸, 초등학교 3학년 손녀 등 여섯 식구가 올라온 강복순(74ㆍ여)씨는 숭례문을 보고 이내 망연자실했다. “얘기로 듣거나, TV로 본 모습보다 훨씬 더 참담하다”는 그는 “길도 멀고, 날씨도 추웠지만 어린 손녀들에게 ‘다신 이런 일이 생겨선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상경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4살짜리 딸과 함께 강릉에서 온 노희훈(43)씨는 “2005년 낙산사 화재 때도 큰 충격을 받았는데, 서울에서 국보 1호가 불타 없어졌다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시시비비를 가려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재 현장 주변 곳곳에서는 시민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현장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든 가로 20m 세로 5m 가량의 투명 가림막 앞에는 시민들이 끝없이 몰려들어 침통한 모습으로 묵념을 올렸다. 현장에서는 ‘반성의 의미에서 불탄 숭례문을 그대로 보존하고, 복원할 ‘새 숭례문’은 적당한 다른 자리에 만들자’는 내용의 서명운동까지 전개돼 3일 동안 약 3,000명의 시민이 서명했다.

■ 숭례문 49재 '동병상련' 낙산사서

숭례문의 넋을 기리는 49재(四十九齋ㆍ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가 3년 전 같은 아픔을 겪었던 낙산사에서 3월 29일 치러진다. 낙산사는 2005년 4월 강원 설악산 일대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이 강풍을 타고 사찰 등으로 번져 전각 13채가 전소되고 보물 제479호인 동종이 녹아 내렸다.

17일 낙산사와 양양군 등에 따르면 49재는 경희대 관광대학원 안경모(50) 교수가 낙산사 주지 정념 스님과 이진호 양양군수에게 제안해 열리게 됐다. 추모제에서는 숭례문과 낙산사 등의 문화재 소실 후 남은 부재(部材)와 각종 관련 영상물 등을 전시할 예정이다.

박원기 기자 one@hk.co.kr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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