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공들여 세운 건축물에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염원과 이상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것이 무너질 때, 인공물에 연관하는 인류의 축적된 집단 기억에도 변형이 가해진다. 왜곡이 일어날 수도 있고, 망각이 발생할 수도 있고, 상처가 남을 수도 있고, 분노가 타오를 수도 있다.
숭례문 화재 사건을 장장 6시간동안 생중계로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여러 상념이 머리 속을 지나쳤는데, 그 가운데 한 이미지는 1950년 전소된 일본의 금각사였고, 또 다른 하나는 2001년 무너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였다. 조금 다른 이미지도 떠올랐는데, 그것은 모더니즘 집합주택의 실패 사례로 낙인 찍힌 프루이트 이고(Pruitt Igoe) 단지의 폭파 철거 장면이었다.
이윽고 떠오른 이름 하나는 <고야니스카시> . 고드프리 레지오(68) 감독이 1982년 발표한 기념비적인 영화의 제목이다. ‘코야니스카시’란 호피 족 인디언 말로 ‘균형을 잃은 삶’을 뜻한다. 극적 전개 구조나 대사를 보여주지 않는 <고야니스카시> 는, 음악과 이미지로만 구성된, 묵시론적 느낌의 영상 서사시다. 고야니스카시> 고야니스카시>
화면은 고대 인디언의 벽화에서 시작한다. 이후 경외감을 일으키는 대자연, 그리고 인간의 노동이 일군 대지를 제시한다. 뒤를 이어 비인간적인 속도로 변화하는 대도시가 등장하고,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 균형을 잃은 채 질주하는 현대문명이 대자연의 질서에 대비된다.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1960년대 ‘머큐리 프로그램’에 동원된 로켓 ‘아틀라스’다. 이 로켓은 발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공중 폭발했는데, 그 과정은 고화질 필름으로 고스란히 기록돼 전한다. 화염을 뿜으며 애처롭게 추락하는 로켓의 잔해를 보여주던 영상은, 다시 고대 벽화로 전환되고, 화면은 마지막으로 암전한다.
가톨릭 수도원 출신인 감독 레지오는 7년에 걸친 고단한 작업 끝에 이 영화를 완성했다. 촬영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특수 영상 자료의 입수와 사용 권리의 획득에 적잖은 시간이 소모됐다고 전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상의 기본 단위가 되는 것은 사운드트랙이다. 음악을 맡은 작곡가 필립 글래스는 발표 당시 여섯 트랙으로 나뉜 사운드를 들려줬다. 1장은 <고야니스카시> , 2장은 <선박들> , 3장은 <운경> , 4장은 <프루이트 이고> , 5장은 <격자> , 6장은 <예언서> 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예언서> 격자> 프루이트> 운경> 선박들> 고야니스카시>
1998년 작곡자는 이를 다듬어 여덟 트랙의 작품으로 재녹음해 별도의 음악작품임을 분명히 했는데, 이는 그의 음악 세계를 대변하는 수작 중의 수작으로 꼽힌다. <고야니스카시> 는 북미의 역사를 비언어적 이미지로 관통했다. 만약 누군가 한반도의 역사를 이미지로 관통하는 영상물을 제작한다면 어떨까? 울산 대곡리의 반구대 암각화에서 시작하는 영상이 무엇으로 종결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운데 불타는 숭례문의 모습은 반드시 등장할 테다. 고야니스카시>
미술평론가 임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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