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극작가ㆍ연출가이자 소설가인 쓰카 고헤이(60ㆍ한국명 김봉웅)씨의 장편소설 <가마타 행진곡> 과 <비룡전> (노블마인 발행)이 출간됐다. 쓰카 씨가 쓰고 연출한 <이타미 살인사건> <가마타 행진곡> 등이 국내 상연됐고 1999년엔 직접 자기 극단을 이끌고 내한 공연을 갖는 등 국내 연극계에선 지명도가 높지만, 한국계 작가 최초로 나오키상을 받은 탁월한 소설가인 그의 작품이 번역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마타> 이타미> 비룡전> 가마타>
82년 나오키상 수상작 <가마타 행진곡> 은 인기배우 ‘긴짱’과 그를 추종하는 단역배우 ‘야스’의 가학-피학적 관계를 코믹하게 다룬 작품이다. 90년 요미우리문학상 희곡상을 받은 작품을 소설로 개작, 97년 발표한 <비룡전> 은 70년대 초 전공투(일본학생운동)를 배경으로 운동권 여대생과 시위 진압 기동대장의 순수한 사랑을 그렸다. “진실로 서로를 사랑하는 커플이 모두 사라지는 날, 지구는 멸망하게 될 것이란 것이 내 작품의 커다란 테마”라고 말하는, 올해 한국 나이로 환갑을 맞은 쓰카 씨와 인터뷰했다. 비룡전> 가마타>
-먼저 희곡으로 창작해 초연한 뒤 소설로 다시 쓰는 것이 당신의 일반적 작업 방식이라 들었다. 이번에 소개된 두 작품도 그런가.
“그렇다. <비룡전> 은 73년 <초급 혁명강좌 비룡전> 이란 제목으로 초연한 후 90년 <비룡전-살육의 가을> (요미우리상 수상작)로 개작 상연했다. <가마타 행진곡> 역시 80년 무대에 처음 올리고 이듬해 소설로 발표했다.” 가마타> 비룡전-살육의> 초급> 비룡전>
-학생운동이 절정을 치닫던 60년대 말 대학에 입학한 ‘전공투 세대’다. 정치ㆍ이념적으로 치열했던 당시를 파격적 연애담으로 비껴 다룬 <비룡전> 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을 것 같다. 비룡전>
“그 시절 대학생들은 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고 일어났지만, 재일동포인 내가 그런 운동에 가담하는 것은 집주인 싸움에 세입자가 참견하는 꼴이라 여겨 연극에만 골몰했다. 어느날 운동권 학생들이 우리 극단에 쳐들어와 “나라가 이 지경인데 이따위 연극이나 하다니 수치스럽지 않냐”고 퍼부었다.
그랬던 이들이 막상 졸업하자 체제를 저항없이 받아들였고, 난 애초의 신념을 잃지 않고 줄곧 연극을 해왔다. 신념을 지키려는 힘이야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비룡전> 은 그 시대를 뜨겁게 산 순수한 사람들의 존재를 이 시대 젊은이의 기억에 남겨주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이야기다.” 비룡전>
-<비룡전> 이 한국에서 영화로 제작되면서 배경이 전공투에서 80년대 한국 학생운동으로 바뀐다고 한다. 두 학생운동이 여러모로 성격이 다른 만큼 원작자로서 우려도 있을 법하다. 비룡전>
“<비룡전> 은 운동권, 기동대 모두에서 용서받지 못할,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사랑 이야기다. 소설에서 기동대장이 사랑하는 여학생을 처음 집으로 데리고 온 날,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덮치게 될까봐 대형 냉장고에 몸을 묶고 잔다. 사랑의 힘은 무서운 것이라 밤새 냉장고는 여학생 쪽으로 이동을 하지만. 사랑과 배려가 일으키는 인간의 가능성은 어느 나라, 어떤 상황에서도 통하는 것이다.” 로미오와> 비룡전>
-<가마타 행진곡> 에서 야스는 긴짱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면서도 결국 긴짱의 행동을 닮아간다. 폭력적 권위에 눌리다가 어느덧 권위주의에 길드는 사회 현상에 대한 풍자로 읽힌다. 가마타>
“이 소설로 나오키상을 받을 때 심사위원 이쓰키 히로유키(소설가)씨가 “이 작품은 일본 천황제를 비유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딱히 그걸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었지만 아주 근접한 해석인 것 같다. 이 작품 원작의 동명 영화를 만든 감독(후카사쿠 킨지)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가마타 행진곡> 에서 엑스트라 배우 야스의 아픔을 주목하는데, 사실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자기 여자를 남에게 떠맡길 수밖에 없는 남자의 비애였다. 가마타>
(*소설에서 긴짱은 추문을 우려해 자기 아이를 임신한 여배우를 야스에게 떠맡겨 결혼시킨다). 자신의 카리스마 때문에 스타로 살아가야만 하는 자의 비애는 보통의 슬픔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긴짱은 제멋대로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창작할 때 ‘한국계 작가’라는 자의식이 어떻게,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나. 당신처럼 극작가로 출발한 소설가 유미리씨를 비롯한 재일동포 2, 3세대 작가들의 활동은 어떻게 보는지.
“다른 작가들을 특별히 의식하진 않는다. 작가란 제각기 자신이 살아온 역사 안에서 언어를 건져올려 세상에 작품을 내놓는 자들일 뿐이다. 나 또한 한국계 작가라는 의식을 갖고 작품을 쓰지 않는다. 다만 90년 <딸에게 들려주는 조국> 이란 에세이집을 내면서 처음으로 한국인이란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딸에게>
-70, 80년대 ‘쓰카 붐’이란 신조어가 생길 만큼 일본 정상급 극작가 및 연출가로 꼽힌다. 연극인과 소설가 둘 중 어느 쪽으로 불리길 원하나.
“‘연극은 F1(1급 자동차 경주) 레이스 같은 것’이란 말을 자주 한다. 트랙을 빙빙 돌 뿐인 경주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한계를 넘은 스피드에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극이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소다.
관객은 인간의 가능성을 넘은 곳에서 계속 투쟁할 힘을 가진 배우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나는 그렇게 연극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태어난 언어와 가능성을 엮어 소설로 써왔다. 난 아직 소설엔 서툰 사람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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