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미국인들은 제44대 대통령으로 정치적 이단아를 선택할지 모른다.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나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모두 두 당의 전형적인 대통령 후보상과는 거리가 멀다.
아직은 변수가 많지만 검은 피부를 지닌 오바마 의원이 백인 여성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누르고 8월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후보로 지명된다면 백인앵글로색슨계가 지배해온 미국 정치의 인종적 배타성은 종언을 고하게 될 것이다.
대신 노예해방에 맞먹는 흑인의 정치적 해방사가 기록된다. 의회의 비례대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예전체 인구의 5분의 3만 인구수로 환산하는 절충안을 헌법에 명시한 19세기 초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만큼 흑인 후보 지명은 미국 정치의 정통에서 비껴나 있다.
매케인은 스스로 별종이라 부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공화당의 정신적 지주인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을 향해'불관용의 사도들'이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정통 보수주의자들로부터 사나운 공격을 받아야 했다. 유명한 보수적 입담꾼 러시 림보는 매케인이 대선 후보가 되는 날이 공화당 파멸의 순간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래도 그는 꿋꿋하게 버텼다. 한때 사퇴를 고려할 정도로 바닥을 헤맸던 매케인은 2위와의 격차를 크게 벌린 지금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거니는 사진을 보여주며"나는 공화당원"이라고 외치는 그의 변신은 당내 보수파를 끌어안으려는 노력이자 그를 내친 보수파에 대한 통렬한 복수이기도 하다.
각 당의 이단아가 만나는 접점은 둘 다 당파성을 과감히 던져 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본선에서 서로 으르렁거리겠지만"지난 50년 동안 오바마와 매케인만큼 지명 이전에 자기당의 정체성을 공연연하게 뛰어넘으려는 후보를 만나지 못했다"는 평가는 유효하다.
베트남전쟁 포로 출신인 매케인은 안보 문제에서는 확고하게 공화당 주류와 함께 했지만 동성애, 이민정책, 지구 온난화 문제에서는 민주당과 손 잡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오바마도 레이건을 미국의 진로를 바꾼 아이디어의 대통령이라고 말했다가 힐러리로부터 레드 팀(공화당)을 찬양했다는 반격을 받았지만 민주당원이라고 해서 공화당원이 아이디어를 가졌다는 말도 못하냐는 광고로 방어막을 쳤다.
80년대 초 레이건이'레이건 민주당원(Reagan Democrats)'이라 불리는 백인 노동자를 끌어들였듯이 화합을 앞세운 오바마에게'오바마 공화당원(Obama Republicans)'이라는 백인 보수층이 몰리고 있다.
당의 정통성을 중시하는 힐러리가 빠르게 당 안팎의 지지를 잃어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점에서 2008년 미국의 대선은 당의 정통성에 충실한 후보를 고를 것인가, 초당적 합의를 앞세우는 지도자를 선택할 것인가를 앞에 둔 선택의 기로이기도 하다.
무엇이 미국인에게 이단아를 포용하는 관용을 베풀게 했을까. 답은 자명하다. 초당파적 합의가 살아 숨쉬던 전후의 전통 대신 당파적 이해에 매몰된 현실 정치에 대한 환멸이다.
매케인이나 오바마에 대한 환호는 10명 중 7명 꼴로 미국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현실 진단에 대한 변화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을 불과 1주일 앞두고 다툼의 목소리가 커지는 우리의 정치판에 미국 발 통합의 메시지가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승일 국제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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