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차 주부 차은영씨. 요즘 부쩍 그릇에 관심이 많아졌다.
“외식할 때 보면 맛도 중요하지만 음식에 맞춰 잘 선택된 그릇을 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집에서도 예쁜 그릇으로 맛깔난 상차림을 내놓아야지 하는 욕심이 생기죠.”
푸드스타일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릇을 보는 시각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 가볍고 쉽게 깨지지 않아 사용하기 편한 그릇이 최고였던 시대는 가고, 식탁을 차린 사람의 취향과 품격을 드러내는 가장 은근하고 고상한 수단으로서 그릇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시대가 왔다. 한식 상차림에 잘 어울리는 그릇 고르는 법을 푸드코디네이터 한서연씨에게 물었다.
“그릇을 보는 눈은 그냥 길러지지 않아요. 여주나 이천의 도예공방, 인사동이나 황학동의 그릇가게 등을 기회가 되는 한 자주 둘러보면서 내공을 쌓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서연씨는 그릇 고르기의 중요성에 대해 “제 아무리 고가 제품이라도 음식을 살려주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 자신 정교한 무늬에 끌려 한 유명 도자기업체 제품을 세트로 구입했다가 어떤 음식도 그 그릇에만 담으면 그릇으로 인해 오히려 음식이 죽는 것을 경험하고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면 음식을 살려주는 그릇이란 어떤 것일까.
“일반적으로 한식은 오방색을 사용해 색이 화려합니다. 더구나 한 상에 여러 음식을 같이 차려내지요. 복잡하고 현란한 느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서 음식보다 도드라지지는 않되 은근한 멋을 더해주는 것이 좋은 그릇입니다.”
도자기나 강화유리, 놋 등 여러 소재 중 한식 차림에 가장 어울리는 것으로는 생활도자기를 으뜸으로 친다. 표면이 정제되지 않은 듯 다소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 나는 생활도자기는 비록 무겁지만 소박함과 정겨움, 고상함을 두루 표현할 수 있는 소재다. 음식 스타일링에 익숙치 않은 사람이라면 고백자가 더 안전하다. 고백자는 오래된 백자라는 뜻이지만 골동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균질하지 않은 흙을 사용해 표면이 약간 울퉁불퉁하고 검은 점도 간간이 박혀있어 예스럽게 느껴지는 백자류를 말한다. 어떤 음식도 잘 담아내는 색감을 갖췄다.
생활도자기를 고를 때는 가장 먼저 식탁의 크기와 디자인을 고려해야 한다. 식탁 크기에 비해 너무 큰 접시나 캐주얼한 디자인의 식탁에 어울리지 않는 육중한 그릇은 피하는 것이 좋다.
디자인이 너무 복잡하거나 무늬가 많은 것은 음식을 담았을 때 시선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무늬가 없거나 있더라도 그릇 바깥쪽에 간결하게 들어간 것이 좋다. 단아한 느낌의 색감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식 자체가 색이 강하기 때문에 그릇의 부드러운 색감으로 중화시키는 이치” 이다. 보통 색이 진하게 나오는 도자기는 질 낮은 상품일 경우가 많다.
용도에 따라 굽 높이를 조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굽은 그릇의 높이를 말하는데 밥그릇보다는 요리접시나 디저트용기처럼 내용물을 돋보이게 할 용도로 사용하는 그릇에 주로 달린다. 보통 2~2.5cm 정도면 살짝 튀면서 권위적이지 않아 적당하다.
무광이냐 유광이냐를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 한씨는 “일반적으로 한식에는 무광 제품이 더 잘 어울리며, 유광 제품과 무광 제품은 섞어 쓰면 촌스럽게 보이므로 따로 쓰라”고 조언한다. 소장하고 있는 다른 그릇들과 적절히 매치시킬 수 있는가를 고려하는 것도 다양한 쓰임새를 따져본다는 측면에서 권장한다.
식탁보 위에 직접 그릇을 놓아보는 것도 좋은 감별법이다. 한창 그릇 공부를 할 때는 직접 식탁보 원단을 들고다니며 그릇을 고르기도 했다는 한씨는 “아름다운 식탁은 음식은 물론 그릇과 테이블웨어가 서로 조화를 이룰 때 나온다”면서 “가능한 자주 식탁보 위에 그릇을 직접 놓고 보면 감식안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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