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지음 / 푸르메 발행ㆍ239쪽ㆍ1만1,000원
올해로 환갑을 맞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의 새 산문집은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교유해온 사람들에 대한 글모음이다. 2000년 산문집 <인생> 을 낸 이후 연재하거나 틈틈이 써온 글을 묶었다. 인생>
가족, 불알친구, 동료문인, 어린 제자들을 망라한 이 ‘열전’은 일평생 고향(전북 임실)을 지키며 살아온 김씨의 성장기이자, 빼어난 서정과 형식으로 농촌의 삶을 표현해온 그의 시 세계로 통하는 안내서이기도 하다.
총 4부 중 1부는 고향 동무 이야기다. 손기술이 대단한 왼손잡이 싸움꾼 용조 형, 방귀로 전설적 일화를 여럿 거느린 ‘안뽕’ 용덕, 양장점을 차려주겠다고 속이고 신붓감을 벽촌에 데려와 늦장가 간 사채 등등. 오리 사육 사업 실패 후 무위도식하던 김씨에게 교사 시험을 권유한 고마운 친구 철호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농사꾼에서 떠밀리듯 ‘산업 역군’으로 변신한 이농 1세대였다. 성장기 추억담은 웃음을 빼물게 하지만, 나이 들수록 고단해지는 친구들의 처지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김씨는 “고향이 부서지고 우리들의 늙음은 때로 쓸쓸하여서 눈물이 나”지만 “생각해보면 고향을 가진 우리들은 다 행복한 사람들이 아닌가”(22-23쪽)라며 삶을 긍정한다.
20, 30대 시절을 추억한 2부엔 화가 임옥상 유휴열씨, 시인 김남주 이시영씨 등 익숙한 이름이 많다. 김씨가 등단했던 80년대 처음 만나 교분을 두텁게 한 이들이다. 임옥상씨와는 팬으로서 첫 인연을 맺었다.
80년대 초 잡지에서 본 임씨의 작품에 충격을 받고 화가 친구들에게 수소문, 마침 전주대에서 재직하던 임씨를 만난 것. 임씨가 상경한 후에도 변함 없는 두 사람의 우정을 빛내는 일화 한 가지.
“몇 년 전에 그가 전주에 강연을 왔는데, 우리 아내가 그 강연장에 앉아 있는 줄도 모르고 내 말투로 내 흉내를 내며 그가 내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몇 점 그렸다고 했단다.”(83쪽)
김씨는 90년대 들어 따르던 선배 시인 이광웅, 김남주씨를 잇따라 잃고 몇 년 간 극심한 심신의 고통을 겪었다고 회고한다. “형, 나는 이제야 숨을 크게 쉽니다. 그리고 그리운 형을 부릅니다.”(143쪽) 책에선 죽은 지인들을 향한 김씨의 애달픈 만가(挽歌)가 자주 들린다.
3부에서 김씨는 1970년부터 모교인 덕치초등학교와 인근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살뜰한 정을 쏟았던 어린 제자들을 하나씩 불러낸다.
“나와 함께 지낸 아이들이 진정으로 자연을 이해하고 사람과 자연을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178쪽)하는 김씨의 가르침에 따라 건강하게 커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4부는 부모님, 특히 어머님에 대한 헌사다. “어머님은 지금도 나에게 “용택아,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고 하시며 나의 삶을 타이르신다.”(206쪽) 비록 글자를 모르는 촌부지만 김씨에겐 육신의 어머니이자 사람을 존중하며 어울려 사는 법을 늘 깨우치는 스승이다. 6남매에게 한없이 너그러웠던 아버지는 예순 세 해의 신산했던 생을 마칠 즈음 어머니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랑 사니라고 참 애썼구만.”(219쪽)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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