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광 지음사계절 발행ㆍ212쪽ㆍ8,500원
소설가 김종광(37ㆍ사진)씨는 ‘역사소설가’다. 김씨가 작년 <율려낙원국> 시리즈를 런칭했고, ‘90학번 세대’의 성장 소사(小史)를 담은 <야살쟁이록> <71년생 다인이>를 펴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야살쟁이록> 율려낙원국>
당대를 다룰 때에도 그 역사적 맥락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태도가 역사가의 그것과 매우 닮은 까닭이다. 그런 그가 작정하고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를 훑었다. 그런데 그 방식이 기발하다. 10대의 연애상 변천사를 통해 사회 변화의 흐름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처음 연애> 속 12편의 연애소설은 모두 ‘역사적 사랑’이다. 각 단편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굵직한 사건들은 제가끔 ‘역사적 커플’을 맺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처음>
1950년대 자유당 정권기를 무대로 한 단편 ‘징검돌’에서 중학생 ‘농민’은 친일파 출신 부잣집의 야산에서 나무를 하다 발각된 일을 무마하려던 중 그 집 조카딸 ‘미순’과 가까워진다.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된 60년대 이야기인 ‘삶은 달걀’에서 ‘순영’과 공사장에서 날품 파는 ‘천재’의 만남은 성공한 개발업자인 순영의 아버지가 있기에 가능했다.
“전태일이라는 청년 노동자가 제 몸을 불살라 버렸어도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40쪽)던 70년대엔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한 공장 노동자들의 풋사랑이 피어난다(‘고향 가는 길’). 87년 태풍 셀마는 물난리를 피해 언덕바지로 피신하던 ‘나’가 알몸뚱이에 티셔츠 한 장 걸쳐입은 동급생 ‘정애’를 들쳐업게 만들었고(‘집중호우’), 2002년 월드컵은 거리 응원을 따라 나서지 않은 두 남녀 학생을 덩그러니 교실에 남겼다(‘월드컵’).
김씨는 4ㆍ19혁명, 전교조 사태, 서울올림픽, 대학가의 91년 정국, 외환위기 등 묵직한 역사의 한복판 아닌 그 언저리에 ‘1318 커플’의 연애담을 슬쩍슬쩍 걸치면서 부담스럽지도, 그렇다고 아주 가볍지도 않은 읽을거리를 만들어냈다.
작품마다 개성있게 변주하는 의뭉스럽지만 순수한 10대들의 캐릭터와, 힘 있는 입담으로 쓱쓱 얽은 상황 설정을 통해 김씨는 12색의 다채로운 첫사랑을 선사한다.
수위를 지켜가며 능청스레 끼어드는 음담(淫談)이 이야기에 감질나는 찰기를 더한다. 책 뒷편 13쪽짜리 ‘작가의 말’엔 ‘1318의 사랑 역사’에 대한 제법 진지한 고찰이 담겨 있어 (특히 청소년들의) 작품 읽기에 도움을 준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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