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볼만 지음ㆍ유영미 옮김웅진 지식하우스 발행ㆍ232쪽ㆍ1만1,000원
오늘날 선진국의 평균수명은 75~80세로 100년 전의 2배, 18세기와 비교하면 거의 3배로 증가했다. 인구통계학적 변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생에 대한 태도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좀더 구체적으로는 ‘노년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다.
독일의 에세이스트인 슈테판 볼만은 생물학적으로도 장수했을 뿐 아니라 최후까지 정신적 긴장을 놓지않고 인생을 마감한 이들의 삶을 조명, 해답을 제시한다. 키워드는 ‘다양성’과 ‘유연성‘이다.
지은이는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이나 프랑스의 여류소설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1873~1954) 처럼 ‘여러 개의 삶을 병렬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프랭클린은 “시간은 돈이다”라는 금언에서 보여주듯 이윤추구의 중요성을 설파한 자산컨설턴트이기도 했지만, 78세 때 바다에서 친구에게 편지를 써 배들의 속력을 높이고 낮추는 법을 조언한 탐험가이기도 했다.
그 뿐 아니라 피뢰침을 발명한 발명가, 미국 최초의 우체국장 등 참을 수 없는 지식욕을 바탕으로 인생이 보여줄 수 있는 다면성은 최대치로 보여줬다.
저자는 소수 만이 그런 삶의 방식을 취할 수 있었던 계몽주의 시대와 달리,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요즘 사람들에게 플랭클린의 삶은 여전히 표본이 될 만하다고 말한다.
콜레트는 어땠을까? 시골출신의 문학소녀였던 그녀는 출판업자의 아들과 결혼하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착취하는 남편과 헤어진 뒤 33세 때부터 독립적인 커리어를 쌓는다. 작가, 언론인, 배우, 춤꾼, 심지어 누드모델로 활동했고 60세가 넘어서는 뷰티살롱을 운영하며 화장법을 조언하기도 했다.
세상을 뜨기 2년 전인 79세 때 일기에 남긴 “내가 원하는 것은 새롭게 시작하는 것, 새롭게 시작하는 것,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라는 구절은 절대적이고 표준적인 삶이 더 이상 당위가 아닌 현대인들에게 충분히 시사적이다.
이밖에도 생애 마지막 6개월간 147점의 소묘와 회화를 남긴 파블로 피카소(1881-1973), 74세 노인으로 19세 아가씨에게 청혼했던 요한 볼프강 괴테(1749~1832) 등의 만년도 음미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유난한 열정으로 삶의 다양성을 추구한 ‘천재’들과 달리 노년을 맞는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세계에 갇혀 유연성을 잃고 다른 사람들과 불화를 겪는 것이 큰 고민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방패막이로 급속한 육체적ㆍ정신적 쇠약을 꼽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그 볼멘 소리에 대해 45세에 명성을 얻기 시작, 80세가 넘어서도 탁월한 연주실력을 보여준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1900~1982)를 소개하며 희망을 준다.
루빈스타인은 자신의 연주비결을 “몇 개의 작품 만을 연주하고, 그 작품들을 더 열심히 하고, 템포가 빠른 대목이 나오기 전 속도를 늦춘다”고 했다. 저자는 이는 ‘선별-최적화-보정’ 이라는 전략으로 나이가 들수록 저하되는 지적, 체력적 유연성의 쇠락속도를 늦출 수 있는 실용적 방책이라고 조언한다.
길어지는 인생은 두려움이 아니다. 새로운 행동규범을 능동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유연성만 있다면 ‘고령사회‘라는 디스토피아는 ‘장수사회‘라는 유토피아로 바뀔 수 있다고 책은 웅변한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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