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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아! 숭례문… 금강송은 그래도 꿋꿋이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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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아! 숭례문… 금강송은 그래도 꿋꿋이 서있었다

입력
2008.02.1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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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그립다. 겨울이 깊어질대로 깊어진 지금, 세상은 흰색이 아니면 잿빛일 뿐이다. 문득 흰 눈 속에 고고하게 초록을 뽐낼 금강송이 떠올랐다. 생명의 붉은빛 짙게 감돌며 거침없이 하늘로 솟구친 나무줄기와 사철 싱그러운 초록의 솔잎. 나무 중에서 그 으뜸으로 치는 금강소나무다.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할 금강송를 보러 갈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찬바람을 맞으며 눈밭에 피어난 '초록의 카리스마'를 만나러 달려간 곳은 강원 삼척의 준경묘와 경북 울진의 소광리. 귀한 금강소나무 중에서도 최고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강원 삼척 준경묘

두타산과 덕흥산이 만든 깊은 골짜기에 숨은 준경묘는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마을에서 올라간다. 활기리 농산물센터 앞 공터에 차를 대고 눈길을 걸어 올랐다. 800m 가량은 약간의 언덕길이다. 제법 허벅지가 팍팍해져 올 무렵 길은 평탄해지고 호흡도 제 리듬을 찾는다. 눈 쌓인 오솔길이 금강송이 우거진 솔숲으로 안내한다.

한적한 눈길을 걸어 도착한 준경묘. 입구는 금강송으로 빼곡했다. 그 중에는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과 혼례를 치르고 꽃가루를 받은 '정부인송'이 있다. 높이 32m, 둘레 2.1m의 100살이 넘은 금강송이다. 산림청 임업연구원이 전국 곳곳을 뒤져 찾아낸 가장 우수하다는 금강소나무다.

준경묘 터는 조선 왕조를 낳은 천하의 명당이다. 흰 눈에 가득 덮인 준경묘는 봉분 주변에 석물이 없는 것 말고는 다른 왕릉 못지않은 위엄과 규모를 갖추고 있다. 태조의 4대조,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첫번째 용인 목조가 전주에서 살 때 산성별감과 다투다 처가가 있는 이곳 삼척으로 피해왔다.

이곳에서 부친상을 당한 목조는 명당이라는 도인의 말을 듣고 이곳에 아버님을 모셨다. 도인은 백마리의 소와 황금관을 쓰면 후손이 왕이 된다고 했지만 형편이 넉넉치 못했던 목조는 100(百)마리 소 대신 흰(白) 소와 황금빛의 귀리짚으로 장사를 지냈다고 하는 '백우금관(百牛金棺)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묘 주변을 둘러싼 숲에는 둥치 굵은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찼다. 이따금 금강송에서 떨어진 눈송이들이 부서지는 소리만 들릴 뿐, 찾는 이 드문 준경묘의 겨울은 평온했고 적막했다.

활기리에서 4km 떨어진 하사전리에는 목조의 어머니를 모신 영경묘가 있다. 준경묘 만큼은 아니어도 빼어난 소나무들이 멋진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033)570-3224

울진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불영계곡을 따라 36번 국도가 뚫리기 전까지 울진 사람들이 내륙으로 가려면 열두 고개를 넘어야 했다. 죽변에서 소금과 생선을 짊어진 지게꾼은 돌재와 나그네재를 넘어, 두천의 주막거리에서 하루를 쉬고는 다시 바릿재와 샛재를 넘고 소광리로 해서 느삼밭재, 넓재 등을 거쳐 춘양장이나 봉화장으로 갔다.

두천마을에서 소광리까지 가는 십이령 옛길이 남아있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그 길을 찾아 가려고 했다. 하지만 울진 사람들은 모두 손사래를 치며 말린다. 인적이 끊긴, 허벅지까지 쌓인 눈길을 어떻게 가려느냐는 것. 결국 무모한 꿈을 접고 소광리까지 차로 접근할 수 있는 917번 지방도 길로 방향을 바꿨다.

소광리는 개발과 벌목의 칼끝을 피한, 100~200년 넘은 금강송이 밀집한 오지 중의 오지. 이곳은 금강송을 궁궐의 대들보나 왕족의 관으로 쓰기 위해 조선 숙종 때부터 벌채를 금해왔던 곳이다. 1959년 육종림으로 지정된 이후, 1982년 천연보호림, 2001년 산림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울진군청의 도움과 울진국유림관리사무소의 허락을 받아 소광리로 향했다. 하지만 그 길이 만만치 않았다. 917번 지방도의 미끄러운 노면은 4륜구동의 SUV도 설설 기어서야 지날 수 있었다.

그러다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주차장에 훨씬 못미쳐 길이 막혔다. 제설이 못다 이뤄졌기 때문이다. 아이젠과 스패치 등을 착용하고 눈길 위로 올라섰다. 먼저 간 이들의 발자국을 좇아 400여m쯤 가니 금강송 군락지 입구에서 숲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는 500년 소나무가 우뚝 솟아있다.

앞선 발자국은 여기까지 뿐이다. 500년 소나무 너머 눈길엔 산양과 고라니의 발자국, 그리고 바람이 훑고 간 흔적 뿐이다. 갈데까지 가 보기로 하고 푹신한 눈길에 발을 디뎠다. 눈은 무릎을 넘어 허벅지까지 올라왔고, 걸음은 더 무거워졌다. 두번째 500년 소나무를 지나 얼마 못가서는 더는 무리다 싶어 걸음을 돌리기로 했다.

힘겨운 눈도장 찍기를 마치고 돌아서 발자국을 되짚어 내려오는 길. 한결 편해진 발걸음 덕분인지 주위의 풍경이 여유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순백을 배경으로 붉은빛 나무줄기와 푸른 잎들로 도드라진 금강송들. 참으로 당당했다.

사람의 발이 닿지 않는 소광리 숲은 눈이 녹을 때까지 이렇게, 고요한 겨울을 만끽하며 홀로 청청할 것이다. 울진국유림관리소 (054)780-3940∼2

삼척ㆍ울진=글ㆍ사?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길에서 띄우는 편지/ 금강송 숲

눈 속의 금강송 취재를 나간 건, 설 연휴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이었습니다. 강원 삼척의 준경묘로 올라가는 활기리 마을 입구에 ‘황장목은 활기 주민의 목숨이며 생명이다’ ‘삼척시는 황장목 벌채 회유를 즉각 중단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더군요.

2006년 문화재청에서 광화문 복원을 하면서 이곳 준경묘 인근의 금강송을 뽑아다가 필요한 목재로 쓰려던 적이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왕조시대도 아닌데 문화재를 복원한다고 또 다른 문화재를 훼손해서야 되겠느냐”며 반발했고, 전주이씨 종친회도 “500만 전주 이씨의 성역”이라고 반대에 나서 무산됐었습니다. 최근 문화재청이 준경묘 금강송의 벌채를 재추진하면서 마을엔 긴장감이 높아졌습니다.

준경묘 취재를 마치고 울진의 한 여관에 숙소를 잡고 휴식을 취하는데, TV에서 영화 같은 장면이 흘러나오더군요. 남대문이 불에 타고 있는 겁니다. 설마 했지만 사실이었습니다. 참담하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이튿날 울진 소광리로 또 다른 금강송 숲을 찾아가는 길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금강송이 많은 소광리는 먼 미래를 위해 지금 금강송의 자식들인 후계림을 조성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산림청은 형질이 우수한 금강송 유전자원이 건강하게 보존될 수 있도록 이곳을 특별관리하며 애지중지 금강송을 키우고 있습니다.

소광리나 경북 봉화의 서벽, 영양의 본신리, 강원 강릉, 삼척 등지에 자라는 잘 뻗은 금강소나무 둥치에는 노란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습니다. 문화재용으로 쓸 날을 기다리고 있는 금강소나무들입니다. 문화재청과 산림청은 2005년 금강송 보호림 협약을 맺고 150년간 문화재 보수가 아니면 벌채를 금하기로 했습니다.

일제의 약탈과 무분별한 남벌로 많이 사라진 금강송. 그나마 이렇게 계획적으로 보전하고 있어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소실된 남대문을 복원하는데도 이 금강송이 쓰이게 될 것입니다. 아직 이러한 나무가 남아있어 수입목 아닌 우리 나무로 복원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일 겁니다. 하지만 그 귀한 금강송들도 남대문의 서까래가 되는 일은 그리 내키지 않을 겁니다. 너무나 허망하게 타버린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뒤돌아 본 소광리숲. 깊이 눈에 쌓여 사람의 발길을 외면하고 있는 듯한 금강송 숲에서는 찬바람만 휑하니 불었습니다.

이성원기자

■ 속살 꽉찬 울진대게 "게맛을 아는 당신도와, 황홀한맛"

소광리에 눈이 수북이 쌓인 요즘 울진의 바다에서는 대게가 꿈틀댄다. 대게는 12월부터 잡아들일 수 있지만 2월은 돼야 속살이 꽉꽉 들어차 제 맛을 내기 시작한다.

울진에서 잡히는 대게는 주로 죽변항과 후포항으로 모인다. 싱싱한 대게를 가장 싸게 먹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두 곳이다. 항구 주변의 횟집 등 모든 음식점들이 대게를 찌는 찜통을 갖추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아침에 수협공판장에서 형성되는 대게의 가격은 조금씩 다르다. 날씨에 따라 배가 못나가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는 대게가 풍년이었는데 올해는 그만큼 잡히질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시세도 조금 올랐다.

대게를 먹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찜. '완벽한 맛'의 대게에 다른 양념은 군더더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산 채로 그냥 쪘다가는 대게가 발버둥치는 바람에 다리가 다 부러지고 만다. 미지근한 민물에 담가 숨을 죽이고, 찜통에 배를 하늘로 향하게 포개놓고 15분 가량 찐다. 배가 밑으로 향하면 뱃속의 진액이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찐 다음에는 뚜껑을 열지 않은 채 5분 가량 뜸을 들여야 한다. 일찍 뚜껑을 열면 내장이 다리쪽으로 흘러내린다.

울진대게도 주문해서 구매할 수 있다. 울진읍 해송상사(054-781-0880, 011-9365-7575) 등이 전화 주문을 통해 냉동 포장한 대게를 보내준다.

■ 여행수첩

준경묘로 갈때는 영동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를 이용하자. 동해까지 내려온 뒤 7번 국도를 타고 삼척시내로 가다가 유창주유소 삼거리에서 38번 국도로 우회전한다. 태백 방향으로 오르다 미로면 삼정1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해서 조금만 들어가면 활기리다. 준경묘까지 1.8km, 걸어서 왕복 2시간 걸린다.

소광리는 울진에서 36번국도를 타고 봉화 방향으로 가다가 검마산 휴양림 못미쳐 광천교에서 우회전, 917번 지방도로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콘크리트 포장길과 비포장길을 따라 16㎞ 정도 오르면 금강송 군락지다.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울진=글ㆍ사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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