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적인 감정을 참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시너와 라이터로 숭례문과 함께 4,800만 국민들의 마음까지 송두리째 태워 버린 방화범 채모(70ㆍ구속)씨가 처참한 몰골만 남은 현장을 다시 찾았다. 범행 닷새 만이다.
15일 오전 이뤄진 숭례문 방화 사건 현장검증은 경찰 100여명이 삼엄하게 경비하는 가운데 진행됐다. 오전 8시37분께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 모습으로 나타난 채씨는 “사건 현장에 돌아온 기분이 어떠냐”는 취재진 질문에 입을 굳게 닫았다.
씻을 수 없는 죄책감 탓인지 연신 몸을 떨기도 했다. 회색 모자와 흰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씨는 그러나 “억울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임금이 국민을 버린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이다. 약자를 배려하는 게 대통령 아니냐. 진정을 3번이나 해도 안 됐다”며 구속 당시 했던 말을 되풀이 했다.
가림막을 지나 숭례문 내부로 들어선 채씨는 “그래도 인명피해는 없었다.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채씨는 범행 당시 동선을 따라 흙으로 된 숭례문 서쪽 비탈길을 올랐고, 범행 장소인 누각 2층 대신 1층 공터에서 경찰이 준비한 모형 페트병 3개 가운데 1개에 담긴 시너를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시늉을 하는 등 범행을 10여분 간 태연히 재연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현장검증을 지켜보던 남대문 시장 상인 이모(65ㆍ여)씨는 “죽으려면 한강에나 가 혼자 죽을 일이지 남대문을 저렇게…”라며 말을 잊지 못한 채 눈물만 삼켰다. 숭례문 주변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도 출근 걸음을 멈춘 채 한 줌 재로 스러진 현장을 고통스럽게 바라 봤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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