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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헝그리 플래닛' 서구화된 밥상 위 불평등·부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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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헝그리 플래닛' 서구화된 밥상 위 불평등·부조리…

입력
2008.02.1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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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북 발행ㆍ496쪽ㆍ2만5,000원24개국 30가족의 1주일 600끼니의 기록피터 멘젤, 페이스 달리쉬오 지음ㆍ김승진, 홍은택 옮김

“당신이 먹는 것들은 곧 당신의 실존이다. 당신은 기름져 가지만, 당신의 실존은 지금 피폐해져 간다.” 500여쪽 내내, 책은 경고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식탁의 서구화에서 찾는다.

24개국의 30개 가족과 함께 각각 1주일을 지내면서 그 동안 먹어 낸 600여끼니를 265장의 천연색 사진에 담아 낸 책은 알록달록한 식탁을 재현하고, 그 아래 도사린 비밀들을 시원스런 사진과 함께 펼쳐 보인다.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라는 부제 아래 출발한 그 여정은 문제 의식이 살아 있는 테마 여행이면서, 인류학적 탐험이다. 먹거리를 주제로 해, 극에서 극을 오간 기록이다.

하루 1달러의 돈으로 연명해 가는 아프리카 난민촌의 절망은 염소 고기를 바위 위에 놓고 으깨 말린 것과 귀리 가루 등으로 만든 멀건 고기국으로 지탱된다. 이와 반대로 각종 먹거리에 둘러 싸인 선진국 사람들의 배는 두세겹이다.

이 책은 호주, 부탄, 보스니아, 중국, 쿠바, 그린란드 등지의 식탁을 수록한 정밀한 컬러 사진 등의 기록을 통해 21세기판 부조리의 현주소를 보여 준다.

헬스 클럽이 비만을 부추겼다는 저자들의 경험은 결국 패스트푸드에 대한 고발로 귀결된다. 헬스 클럽에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집에서 요리해 먹는 시간이 더욱 부족해져 패스트푸드를 탐하게 됐다는 것. 먹거리 문제에서 지구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의 시선은 통렬하다. “거대해진 미국 국민들의 수명을 단축시켜 준 데 거대 식품 기업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는 비아냥이 대표적이다.

책은 미국ㆍ유럽인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칼로리를 피할 것, 어쨌든 끊임없이 움직일 것, 최소한 가공해서 먹을 것 등을 강력 권고한다. 식탐의 현대인들에게는 장수 마을 오키나와에서 배운 교훈을 전한다. “배가 80퍼센트 부를 때까지만 먹으라는 것”이다. 서구에 대한 비판은 책 전체에 걸쳐 은근히 녹아 들어 있다.

몬도가네식으로 천차만별의 지구인 식생활을 ‘굽고, 삶고, 볶고, 튀기고’라는 말로 압축한다. 또 그 이유를 인류의 숙명으로 돌린다. 즉 내일이면 먹을 게 없을지 모르니, 지금 먹고 또 먹으라고 명령하는 우리 조상 침팬지의 유전자 때문에 우리는 끝없이 먹는다는 지적이다. 빨리 칼로리를 보충할 음식물로 인류의 조상들이 과일을 선호한 탓에 단 것을 탐하다 보니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책은 사진가 - 작가 부부가 일궈낸 독특한 세계 풍물기이다. 그들이 머물며 맞닥뜨린 식품들의 목록, 그 지역만의 특이한 풍습을 꼬치꼬치 기록한 현장 노트 등은 인류학적 현장 탐사와 맞먹는다. 일본 NHK TV나 독일 GEO 매거진 팀 등에 참여한 그들은 대상 가정을 섭외하고, 통역사와 운전사를 직접 구하는 등 자질구레한 난관들을 극복해야 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 그들은 이라크와 쿠웨이트 지역에서 그 곳 주민들의 일주일치 식품과 가족들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은 부시 행정부에 대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었다는 무력감에 빠졌다”며 “(이 책을 쓰는 게)세상에 유용하고, 필요한 일이라는 믿음이 이뤄낸 일”이라고 밝혔다.

남편 피터 멘젤은 환경 전문 사진작가, 부인 페이스 달뤼시오는 페미니즘과 생태 문제를 천착해 온 저술가이다. 홈페이지(www.menzelphoto.com)를 운영중인 두 사람은 현재 세계인의 영양과 글로벌 식품을 주제로 두 번째 책을 기획중이다. 극적으로 대비되는 남북한의 식생활 상황은 이들이 눈 여겨 보는 숙제다.

이번 한국어판을 위해 한국인들에게 보내는 권두의 편지에서 저자는 “전통 한식을 멀리하게 된 결과, 한국인들은 과체중, 비만, 당뇨 등에 위협 받고 있다”며 “미국의 로컬 푸드 운동과 맞먹는 한국의 신토불이(sin-to-bul-yi) 운동은 몸을 소중하게 돌보는 식생활 운동”이라고 충고한다. 타자의 눈을 통해 우리의 실존으로 돌아온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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