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정 지음ㆍ허구 그림계수나무 발행ㆍ140쪽ㆍ8,700원
백 살을 하루 앞둔 할아버지가 컴퓨터에 빠져있는 증손자에게 들려주는 역사와 인생 이야기.
화자는 20세기초 산골짜기에서 태어난 박뛰엄 할아버지다. 외딴 하늘 아래 마을에서 “심심해, 심심해”를 외치던 할아버지. 6세 때 우연히 범을 만났고 그 후 걸음아 나살려라 줄행랑을 치다가 ‘뛰엄병’에 걸렸단다.
집 기둥뿌리에 발을 매달아놓아도 줄만 풀리면 뛰어다녀야 하는 할아버지는 성큼성큼 껑충껑충 이산저산을 뛰며 역사이야기를 훑어간다.
검은 연기 뿜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기다란 먹구렁이(기차의 출현), 마을사람들이 목청껏 노래부르고 신나게 춤도 추었던 일(3ㆍ1운동), 쿵쾅쿵쾅 요란한 소리가 나는 불꽃놀이(6ㆍ25전쟁) 등 마치 포레스트 검프처럼 동화적으로 풀어놓는 우리 현대사이야기가 흥미롭다.
이와 어울리는 할아버지의 인생이야기는 뼈가 있으면서도 딱딱하지 않아 귀에 쏙쏙 들어온다.
할아버지는 도깨비에게 뛰엄병을 판 기억을 떠올리면서, 내 욕심만 차리고 도깨비에게 한 몹쓸 짓이라고 반성하는데 그 기억을 살려 “동무를 사귈 때는 네 하는 짓이 동무에게도 좋은 일인가 아닌가를 잘 따져 생각해보라”고 충고한다.
또한 무서운 범하고 왜 노느냐는 가족들의 꾸중으로 범과 헤어진 일을 안타깝게 회고하면서 “동무를 사귈 때는 그 생김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라” 라고 말하기도 한다. 신문의 상자기사처럼 ‘숨은 이야기’가 본문에 덧붙여져 있는데 자연스럽게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가르칠 수 있다.
가령 뛰엄의 종류를 108가지라고 설명하면서 ‘가시밭을 지날 때는 살살뛰엄, 산딸기 밭을 만나면 잠깐뛰엄, 아침에는 힘이 솟으니까 쿵쿵 뛰엄, 점심에는 배고파서 띄엄뛰엄…’ 같은 설명이 그렇다.
작가는 “옛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셔서 내 아들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그리움의 심정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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