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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전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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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전2권)'

입력
2008.02.1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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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지음고즈윈 발행ㆍ1권 296쪽, 2권 307쪽ㆍ각권 1만2,800원

1799년 정조는 황해도 곡산 부사로 있던 정약용을 형조 참의에 임명하고 오래된 형사사건 하나를 다시 심리하라고 지시했다. 10년 전 양주의 관아 창고를 관리하는 나졸이 의정리에 사는 김태명이란 사람에게, 꾸어 쓴 환곡(還穀) 상환을 독촉하러 갔다가 숨진 사건이었다.

한성부에서 두 번, 형조에서 세 번이나 합동조사를 한 결과 범인은 김태명의 종인 함봉련으로 결론이 났고, 승정원에서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러나 정조는 10년 동안이나 사형집행을 미루고 있다가 정약용이 옥사를 처리하는 솜씨를 보고 이 사건을 맡겼던 것이다. 정약용은 치밀한 조사 끝에 의정리의 호족이었던 김태명의 영향력으로 이웃들이 허위증언을 했고 수령이 눈을 감아준 것을 밝혀냈으며, 함봉련은 석방돼 칼을 벗고 춤을 추며 돌아갔다.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는 대중 역사서 서술작업을 해온 저자가 유교의 이상적인 군주가 되기 위해 평생토록 애썼던 정조의 삶을 치밀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저자는 당시 정조에 맞섰던 노론에 의해 왜곡된 <정조실록> 외에 <일성록> <홍재전서> 등 정조의 저술과, 체제공 이덕무 등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이 남긴 기록을 참고해 정조의 진실에 다가서려 했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것이 자신의 등극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비극적인 상황 때문에 괴로워했으나 이를 극복하고 유교의 철인(哲人) 군주가 되고자 노력했다는 게 저자의 관점이다.

정조는 매일마다 부친의 원수들과 얼굴을 맞대야 하는 상황에서 <대학> 의 ‘정심(正心)’을 되뇌이며 분노와 증오를 다스렸다. 정조는 조정의 어느 신하보다 많은 일을 하면서도 밤새워 책을 읽으며 학문을 닦았다.

경연에서는 학식이 뛰어난 신하들이 국왕을 가르치는 것이 관례였지만 정조는 오히려 신하들을 가르쳤다.

심지어 과거 시험 문제까지 직접 출제했다. 정조는 그러나 책상물림이던 주자학자들과 달리 수원 화성을 3년 만에 축조하고 상가를 조성해 번성시켰으며, 시전 상인들의 독점을 폐지해 상업을 부흥시키는 등 세상 물정에도 밝았다.

“부지런히 일하고 검소함을 밝히는 것이 우리 왕가의 법도다.” 이렇게 생각했던 정조의 치세 기간이 좀더 길었더라면 조선의 말로가 그렇게 참담하지 않았으리라.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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