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의 기(氣)를 받아 열심히 일해 왔는데, 이제는 고통만 느껴지네요.”
국보 1호를 화마(火魔)에 잃어버린 슬픔이야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숭례문 인근 고층 빌딩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심경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은 “평소 남들보다 전망 좋은 근무 환경을 자랑스러워 했는데, 이젠 쳐다보기가 너무 괴롭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숭례문 둘레에는 최대 15m 높이의 가림막이 설치돼 일반인의 시선을 차단하고 있지만 10층 이상 건물에서 근무하는 이들에겐 무용지물이다. 폐허가 된 숭례문의 모습이 그대로 내려다 보이기 때문.
숭례문의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서울 중구 봉래동 우리빌딩 17층 신한생명 서울복합지점에서 근무하는 김영익(41ㆍ여) 팀장은 “완전히 불타버린 모습이 너무 삭막해 보여 마치 내 가족을 잃은 듯한 슬픔까지 밀려온다”며 “아름답고 웅장했던 숭례문의 자태가 그리워 아직도 가슴이 저린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김 팀장은 “슬픔을 달래려 11일부터 사흘 내내 술을 마신 동료 직원도 있다”고 전했다.
숭례문 건너편 대한화재 본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19층에서 일하는 성모(34)씨는 “화재사고 이후 첫 출근을 한 뒤 위에서 내려다 보다 울컥했다”며 “항상 그곳에 있는 친구처럼 친근한 느낌이 들어 오히려 신경을 안 썼는데 ‘문화재라는 게 이만큼 소중했구나’싶다”고 슬퍼했다. 그는 “볼 때마다 기분이 안 좋아져 일부러 잘 보지 않으려 애쓴다”고 했다.
홍콩상하이은행(HSBC) 본사 10층에서 일하는 정지향(41ㆍ여)씨도 “국보 1호 바로 옆에서 근무한다는 자부심에 든든했는데, 이제는 허전함을 넘어 공허감이 밀려온다”며 “내 자리가 창가여서 보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보여 더 애처롭다”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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