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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숭례문이 억울해 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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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숭례문이 억울해 하지 않도록

입력
2008.02.1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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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일본 최고 명문 프로야구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에는 조성민 선수가 투수로 활약하고 있었다. 외국인, 그것도 한국인 선수인데도 듬직한 체구에 잘 생긴 외모, 빼어난 투구로 일본인 팬들이 많았다.

한국과 일본의 여행사가 놓치지 않고 조성민 선수를 상품화 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일본인 팬들을 모아 2박3일간 조성민 선수와 함께 한국 여행을 하는 여행상품을 개발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여행사가 관광 일정을 짜는 모습은 극히 대조적이었다. 한국 여행사 직원은 대충 날짜별로 고궁 관광, 팬미팅 및 사인회 등으로 이뤄진 일정표를 제시했다가 일본 여행사 직원에게 혼쭐이 났다.

일본 여행사 직원은 2박3일간 일본인 관광객들이 이용할 관광버스에 비상약은 있는지, 비상약이 있다면 어떤 약들을 구비할 것인지, 냉장고에 식수는 있는지, 식수를 놔둔다면 어느 회사 제품인지, 그 제품은 믿을만 한지, 운전기사는 운전경력이 얼마나 되며 교통사고를 낸 경력은 없는지, 관광버스는 얼마나 운행한 것인지, 정기점검은 제대로 받았는지, 관광객들이 먹을 식사 메뉴는 무엇이며 식당의 위생 상태는 어떤지 등을 세세하게 따지고 들었다. 관광객의 안전, 서비스 불만에 따른 관광객의 클레임 제기 등 만의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철저히 대비하려 한 것이다.

한국 여행사 직원은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한 채 쩔쩔 매기만 했다. 한국에는 약국이 많기 때문에 승객이 아프면 버스를 세우고 약국으로 뛰어가 약을 사오면 된다, 한국 물맛은 세계적으로 알아준다, 운전기사는 '베스트 드라이버'와 최신형 버스를 배정해달라고 부탁하겠다는 등 군색한 변명만 늘어놓다가 두 손을 들고 말았고, 결국 일본 여행사의 요구사항에 대한 조사와 계획서 재작성으로 몇날 며칠을 허비해야 했다.

소실된 숭례문 옆에서 중장비들이 일사천리로 주변 정리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며 10년전 일본에서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꼼꼼하게 관광객의 안전과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사고 가능성을 점검하던 일본 여행사 직원의 모습이 서둘러 숭례문 복원에 나선 우리 모습과 오버랩 됐다.

화마에 쓰러진 숭례문을 보는 국민 마음은 찢어질 듯 아픈데 관련 당국은 참화의 흔적을 지우는데 급급하다. 화재 바로 다음날 가림막을 세우고 불탄 폐자재를 재빨리 폐기ㆍ분쇄 처리해 버렸다. 대충대충, 빨리빨리 치우고 새로 세워서 국민 기억에서 숭례문의 흉한 모습을 지우려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마저 든다.

국민들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 참화를 어떤 방식으로 대대손손 교훈으로 남겨야 할 지, 이와 유사한 일이 우리 사회에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진지하게 따져보고 싶은데 관련 당국은 '3년내 복원'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지금은 숭례문 복원 작업을 서두르기 보다 가슴속 깊이 숭례문의 처참한 모습을 새겨 넣어야 할 때다. 어린 아이부터 백발 성성한 노인까지 국민 모두가 숭례문을 만져보고 가슴에서 치밀어오르는 뭔가를 느껴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나서 숭례문과 관련된 모든 논의 거리를 가마솥에 부어 넣고 오래도록 끓여야 한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가마솥에서 대책과 교훈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 꼼꼼하게 점검하고 따져봐야 한다. 이번에도 냄비처럼 쉽게 끓어 올랐다 식어 버리면 숭례문이 너무 억울할테니 말이다.

황상진 사회부장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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