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측 대북 지원용 쌀이 북한 군부대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정황이나 의혹은 그동안 탈북자 등을 통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정부와 군 당국이 북한 군부대에서 남측이 제공한 쌀이 발견됐다고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더욱이 정부는 2006년부터 대북 지원용 쌀의 북측 군부대 유입을 알고도 북측에 이의제기를 하거나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묵인해 온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군량미 유입인지 경위
14일 국방부에 따르면 강원 중동부의 남측 전방 부대에서 인제 지역 북한 군부대에 쌓여 있는 적십자 마크의 쌀자루를 처음 확인한 것은 2006년 9월께. 군 당국은 당시 흰색 바탕에 붉은 색의 적십자 마크가 선명한 쌀자루를 북한 군인들이 트럭에서 하역하거나 야적해 놓고 있는 모습을 고성능 감시 카메라로 포착했다.
이 자루들은 북측 쌀자루들과 섞여 있어 북측이 보관 중 실수로 노출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강원 인제 지역 등에서 남측 전방 부대의 정찰감시망에 포착된 북한 군부대 내 쌀자루는 모두 적십자 마크가 찍힌 것으로 미루어 대한적십자사에서 2006년 수해 때 지원한 인도적 지원 물자로 보인다.
하지만 수해지역 주민을 위한 식량이 버젓이 군부대로 유통되고 있는 점을 볼 때 정부가 2000년 이후 해마다 40만, 50만톤씩 차관으로 보내는 쌀의 상당 부분도 북측에서 군량미로 전용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군 당국은 이 같은 대북 지원 쌀 전용을 감시장비와 전방초소 감시병 등을 통해 최근까지 10여 차례 확인했고, 관련 사진도 여러 장 찍어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당국자는 "초소 감시병들이 북한 부대에서 남측이 지원한 쌀자루를 확인한 것은 최근 2년 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군 정보 당국은 통신 감청을 통해 수년 전부터 대북 지원용 쌀이 군부대에 광범위하게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참여정부는 알고도 눈감아
통일부는 군 당국과의 정보공유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도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나 각종 실무회담에서 한번도 이 문제를 정식제기하지 않았다. 사진 증거 등 정황만으로 북측에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대한민국 쌀을 먹고 있다는 북한 군인의 감청내용을 증거로 제시할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대북 지원용 쌀에 대한 북측의 군량미 전용 문제는 이미 탈북자나 언론보도를 통해 여러 차례 제기된 내용이어서 남북 관계에 대한 부담 때문에 북측에 정식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 눈치만 살핀 것이다.
실제로 2006년 9월 일부 언론은 북한군이 화차 위에서 대한민국 마크가 찍힌 쌀 자루를 운반, 관리하는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을 탈북자로부터 입수, 보도하기도 했다. 남북 쌍방이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있는 대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전면적 모니터링 도입 등 근본 대책 마련을 소홀히 한 채 북측의 군량미 전용을 방치해 온 셈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군량미 전용 의혹 때문에 남북회담이나 현장방문 등 여러 계기를 통해 북측에 분배 투명성 제고를 강조해 왔다"며 "향후 이 문제에 대한 강화된 대책을 강구, 북측에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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