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멓게 타 떨어져 내린 서까래를 쓰다듬고 하얗게 부서져 내린 나뭇재를 움켜 쥐었다. 우리의 얼과 삶이 스며든 숭례문의 뼈와 살을 얼굴에 부볐다.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숭례문, 여기 저기 쓰러진 잔해 더미 속에서 시나브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참담하고 부끄럽다.
13일 오후6시20분. 화재 이후 처음으로 처참한 숭례문의 참사 현장이 언론, 국민에 공개됐다. 숭례문 정문(서울역에서 바라보는 방향)을 거쳐 화재 현장으로 발을 내딛자, 고운 잔디는 오간 데 없이 폭탄을 맞은 듯 시커먼 숯덩이로 변한 좌우 언덕의 비참한 모습이 무겁게 가슴을 쳤다.
숭례문 외곽 곳곳은 기둥과 서까래 등 나무 잔해 수십 여개가 불에 탄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불에 탄 부재들은 향후 복원 공사를 위해 손실된 정도에 따라 동, 서, 남, 북 4방향으로 나뉘어 ‘보존이냐, 폐기냐’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한 숨 짓기를 여러 번. 무지개 모양으로 곡선이 아름다운 홍예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불길이 미치지 않은 듯 손실이 적었다. 용 2마리가 꿈틀대는 천장화도 천만다행 무사해 보였다. 화재 진압 당시 엄청난 양의 물이 흘러내려 화려한 색채가 퇴색하지 않았을까, 원형이 뭉개지지나 않았을까 온 국민이 가슴을 졸였지만, 붉고 검은 채색과 금방이라도 그림을 뛰쳐나와 비상할 듯 생생한 용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숭례문 안으로 향했다. 방화 피의자 채모(70)씨가 범행을 위해 올라갔던 서쪽 계단은 무너진 흙더미로 걷기조차 힘들었다. 화재 감식 중인 경찰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내부로 들어가는 사립문을 지났다. 경찰과 문화재청이 잔해를 헤치고 만들어 놓은 폭 1m 정도의 통로 바닥에도 못과 숯덩이, 기와 잔해가 깔려 중심을 잡기 어려울 정도였다. 2층 누각이 무너져 내리면서 숯이 된 기둥, 기와, 흙이 뒤섞인 1층은 그렇게 살짝 만 건드려도 금새 부서지기라도 할 듯 모든 것이 위태로웠다.
간신히 채씨가 2층 누각으로 올라갔다는 동쪽(서울역에서 봤을 때 오른쪽) 목조 계단으로 향했다. 무슨 일인지 계단은 온전하게 남아 있었지만 그 위는 더 이상 발 디딜 곳 없는 허공이었다. 고개를 들자 밤 하늘 뿐이다. 문득 컴컴한 하늘 사이로 비취색 바탕의 오색 단청들이 확대되듯 눈에 들어온다. “살아 남으셨군요!” 현장을 둘러보던 취재진 가운데 누군가의 입에서 들릴 듯 말듯 옅은 안도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1층 단청은 80% 정도 보존됐다는 감식대원의 설명을 듣는 순간 “감사합니다”는 말만 떠올랐다.
동행한 감식대원은 “2층 누각에서 시작된 불로 남문 쪽 지붕이 흘러내려 균형이 깨지면서 북쪽 지붕이 통째로 무너졌고 중앙도 그대로 내려앉은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600년을 한결같이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숭례문은 그렇게 처참한 몰골이 되어 “이렇게 되도록 무엇을 했느냐”고 우리를 향해 꾸짖는 듯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되풀이 말라”고 사무치게 말하는 듯 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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