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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난링구와 아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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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난링구와 아린지

입력
2008.02.1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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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나무 발행인 한창기씨가 3일로 돌아가신지 21년이 됐다. 생전에 그는 한국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뛰어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한국브리태니커 사장을 지냈고 영어교육의 중요성도 누구보다 잘 알아서 영어학원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람들이 잊고 지낸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되살리는데 평생을 바쳐 판소리나 민요 유기 옹기 녹차가 지금처럼 한국인의 생활속에 자리잡게 된 것은 그 덕분이다. 그는 사람들의 입말을 살려내는 '민중구술자서전'의 시대를 열었고, 한글의 인쇄 글꼴을 다양하게 하고자 한 결과 샘물체를 만들었으며 무엇보다 가로쓰기에 앞장섰다.

■ 토박이의 입말이 중요

영어를 아주 잘하면서도 그는 토막영어를 말하는 데 섞지 않았고 일어나 영어의 잔재인, 잘못된 한국말 표현을 아주 싫어했다. 어쩌면 그의 전통 사랑은 영어권 문화를 잘 알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우리 것이 무엇인가에 천착한 것이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생전에 좋은 한국말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영문학자인 이양하씨가 편찬한, 오래된 영한사전을 본다고 했다. 거기에 오래된 우리말이 잘 담겨있다고 했다. 한창기씨가 그러하듯 이양하씨도 훌륭한 영문학자이면서 누구보다 우리말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

한창기씨가 입말을 사랑한 것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쓰는 말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영어발음에 가까워지려는 외래어 규정을 아쉬워했다.

포르투갈어 쿠투가 구두, 영어 램프가 남포로 변했듯 사람들이 주로 쓰는 말을 좇아 팬티는 빤스가, 런닝셔츠는 란닝구여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가 만든 잡지 샘이깊은물은 란닝구와 빤스를 표기법으로 사용했다.

그가 보기에 사람들의 입말을 도외시하고 팬티나 트레이닝복으로 표기하라는 것은 배운자의 억지스런 횡포였다. 그런 그가 오렌지조차 마다하고 어륀지를 외친 이경숙 인수위원장을 보았으면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새 정부의 영어교육 강화안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공교육에서 영어교육을 강화하는 것에서부터 외부의 영어전문가를 교육현장에 끌어들이겠다는 의견, 영어교육을 다른 과목보다 보강하겠다는 의견이 뭉뚱그려 들어있어서 한마디로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는 없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영어 공교육 강화는 백번 옳은 일이다. 그러나 영어시간을 더 할애해서는 안된다. 현재 영어 공교육의 근본 문제는 교사의 질이 아주 낮은 데 있다. 교사들의 수준을 높여서 수업의 질을 높이는 것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실력있는 사람들이 교사로 들어와야 한다.

실력있는 교사로 유학파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한창기씨도 그랬지만 토박이로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도 많다. 이 참에 영어 뿐 아니라 다른 과목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는, 실력없는 교사들은 퇴출되어야 한다.

영어 시간은 현재로도 충분하다. 교육체계가 문제일 뿐이다. 초등학교에서는 회화로만 가르치다가 중학교에 가면 갑자기 문법이 뛰어나오는 이 교과서 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영어란 그저 수단일 뿐이라는 점이다. 영어를 잘함으로써 한국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영어문화권에 수렴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영어는 좀 잘하게 될지 몰라도 한국인의 사고를 깊게 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영어몰입교육은 위험하다.

■ 영어가 아니라 한국문화가 경쟁무기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영어교육을 강조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했다. 인도는 제국주의 영국이 언제든지 빨대를 꽂으면 수탈할 수 있는 경제력의 원천이었지만 그는 돈보다 중요한 문화(셰익스피어)를 선택했다.

결국 인도는 돌려줘야 했지만 셰익스피어로 비견되는 영어는 그후로도 수백년간 영국을 먹여살리고 있다. 먹여 살리는 것만 놓고 보라고 해도 이미 외국의 것인 영어가 아니라 한국문화 그 자체를 풍성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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